[역경의 열매] 이종석 (2) 내 삶을 깨운 기숙사 벽의 ‘Boys Be Ambitious!’
입력 2011-09-05 18:04
그때, 그 순간이 영화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다. 어린 인민군들이 기다란 총을 어깨에 멘 채 힘겹게 남쪽으로 행군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처럼 내 어린 시절은 일제와 여순반란사건, 6·25전쟁 같은 불행한 사건들로 오버랩돼 있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나오는 동안 부모님은 내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만약 조금 일찍 태어났다면 일제시대에 징용으로 끌려가서 전쟁터에서 전사했던지, 6·25 때 학병으로 소집돼 전쟁터에서 산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적당한 시기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현 광주광역시)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광주 양림동의 미션스쿨인 숭일중학교였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했다. 기숙사 방은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 있었다. 바닥 중간엔 허술한 판자로 만든 책상 겸 식탁이 놓여 있었다. 오전 6시가 되면 잘생긴 총각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아침 경건회를 인도하기 위해서다. 수요일 저녁이 되면 교목 선생님이 시무하는 교회에 가서 선배들과 같이 수요예배를 드렸다.
기숙사 벽엔 ‘Boys, Be Ambitious!’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영어 ABC를 막 공부하기 시작한 때라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한 선배가 ‘소년들이여, 대망을 품으라’라는 뜻이라고 해석해 주었다. 어린 가슴에도 그 말이 얼마나 감동이 되었던지 ‘대망을 품어야지’라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숭일중학교 3년을 마치고 숭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숭일고도 미션스쿨이기 때문에 매주 금요일이면 채플(경건회)이 있었다. 그 당시 교장선생님이 CCC 설립자인 고 김준곤 목사였다. 김 목사님의 설교는 조용하면서도 감동을 주고 믿음의 확신을 주고, 생활의 원동력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내 평생 신앙의 뿌리는 그때 자라고 뻗어간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김 목사님 같은 신령한 분을 만나 감명을 받고 도전을 받게 된 일은 내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복이었다. 2년 전 김 목사님이 별세하셨을 때 매스컴이 너무나 초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섭섭했지만 도리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큰 상급이 있겠구나’ 확신하게 됐다.
고교 시절 또 하나 기억나는 분은 영어선생님이다. 그분은 키는 짤막했지만 늘 당당하셨다. 말씀에 확신이 있고 씩씩하셨다. 가끔 수업 시간에 암송해주시던 롱펠로의 ‘인생의 송가(Psalm of Life)’를 지금도 외우고 있다. ‘넓디넓은 인생의 싸움터에서 말없이 끌려가는 우마가 되지 말고 전쟁의 영웅이 되어다오.’ 목소리에 힘을 주어 해석해 가시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지금도 영어선생님의 음성이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특히 요즘처럼 패배의식과 이기적인 마음에 젖어 있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롱펠로의 시를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생의 패배자가 되지 말고 인생이라고 하는 전쟁터에서 영웅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영어선생님은 정규과목 외에도 부교재로 ‘인생의 선용(The Use of Life)’이란 책으로 강의를 하셨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엔 이렇게 되어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적 명언의 서문에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고, 기회는 날아가기 쉽고 실천은 어렵다.’ 구구절절이 젊은이의 심금을 울리는 문장이 많았다. 그 말들이 빈 가슴에 감동을 심고 꿈을 채워주었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