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되지만, 옆 은행은 혹시…” 은행 ‘가계대출’ 떠넘기기

입력 2011-09-04 23:16


“고객님, 저희는 좀 어렵고 옆에 기업은행 가시면 잘해 주실 거예요.”

지난달 29일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서울의 한 국민은행 지점을 찾은 직장인 김경희(31·여)씨는 창구 직원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국민은행에선 대출이 어려우니 근처에 있는 기업은행을 찾아가란 말이었다. 창구 직원은 “요새 대출 금지령이 내려서요. 기업은행은 대출 한도에 여유가 있어서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지점들이 가계대출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가중되는 전세난, 가을 이사철과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한 주택 구매 수요 등으로 대출 수요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일찌감치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증가율 가이드라인(월 0.6%)을 넘겼던 은행들은 이달 들어서도 신규 대출을 자제하며 비교적 가이드라인에 여유가 있는 하나·기업은행 등에 대출 수요를 떠넘기고 있어 고객 불편이 확대되고 있다.

4일 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말부터 이달 들어서까지 본점에는 각 지점의 문의전화가 폭주했다. 타 은행에서 소개받고 왔다는 가계대출 고객이 급증하자 본점에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는 전화였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에 비해 가계대출 실적이 적다 보니 타행 지점에서 우리 쪽으로 고객을 유도하는 것 같다”면서 “당장은 여유가 있지만 대출 실적이 급증하게 되면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도 “가계대출 고객은 원래 충성도가 높은 장기 전속 고객”이라며 “우량 고객을 떠넘길 정도로 타행 사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초로 가이드라인에 여유가 있는 이달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A은행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빡빡하다 보니 웬만하면 신규 대출은 안 받으려고 하고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일부 영업점에서 기존 고객을 돌려보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타행을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시중은행들은 대출 억제책 시행 이후 우대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가계대출 실질금리도 대폭 인상했다. CD연동형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신한은행은 올 초 연 5.3%의 대출금리를 받던 고객에게 현재 연 6.59% 금리를, 우리은행은 연 5.35% 적용받던 고객에게 연 6.40%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가계대출 억제책 이전 4%대의 대출금리를 적용받던 사람이라면 이제 5%대 중반의 금리를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