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반영되는 35㎝ 고등어, 정작 장바구니엔 없다
입력 2011-09-04 12:33
정부가 물가를 조사할 때 대상으로 하는 품목이 소비행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 때문에 ‘물가 착시효과’가 생긴다며 조사 항목을 바꿀 계획이다. 하지만 고물가에 지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수치 개선에만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등어 35㎝의 비밀=4일 국민일보가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 기본분류 품목 및 가중치’ 목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상당수 품목·규격이 소비 성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통계청은 이 목록에 담긴 489개 품목의 793개 규격을 조사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한다. 실질적으로 전수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품목과 규격을 물가에 반영하는 것이다.
물가 조사에 반영되는 신선 생선류는 조기 갈치 명태 고등어 꽁치 가자미 오징어 생선회로 모두 8종이다. 반면 이마트가 집계한 매출액 기준 상위 8종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마트 목록에는 명태 꽁치 조기 가자미가 빠지고 활게찜 자반고등어 참굴비 전복이 포함됐다.
김치는 ‘1㎏ 정도’를 조사규격으로 삼고 있지만, 이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규격은 3.7㎏이다. 생수는 500㎖를 조사하고 있지만 이마트에선 2ℓ들이 6병 묶음이 가장 많이 팔린다. 소비자들이 흔히 과일로 알고 있는 토마토와 방울토마토는 채소류로 분류되고 있다.
또 통계청은 단팥빵과 모카빵 가격을 물가에 반영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 1위 제과점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뜨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빵은 찹쌀 도넛이다. 2~3위가 단팥빵, 소보루빵이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모카빵과 크림치즈호두빵이 1~2위를 기록했다.
고등어는 길이 35㎝ 정도, 무게 400~450g 정도인 것을 조사한다. 국민일보는 안양수산물도매시장을 직접 조사해봤다. 꼬리는 먹을 수 없는 것을 감안해 머리끝부터 꼬리 바로 위 잘록해지는 부분까지 몸길이를 측정했다. 시장 전체 점포 중 35㎝를 넘는 고등어는 일본산 1마리에 그쳤다.
상인들은 “고등어 씨알이 작아져서 35㎝ 크기의 고등어는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며 “25~30㎝ 크기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갈치와 오징어는 몸길이(체장) 기준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나머지 생선은 머리끝부터 꼬리지느러미 끝부분까지를 측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목 바꿔 물가 잡겠다?=통계청은 5년마다 물가 조사 품목·규격을 바꾼다. 현재 쓰고 있는 목록은 2005년을 기준으로 작성됐다. 그동안 1~2인 가구가 늘고 농수산물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이 찾는 규격은 작아졌다. 정부는 내년부터 적용될 물가 조사 항목을 새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목록을 대폭 수정하겠다고 예고했다.
재정부는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5.3%까지 치솟은 주범으로 채소류와 금반지를 지목했다. 재정부는 “금반지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지 않음에도 물가지수에 포함돼 물가가 비싼 것처럼 보이게 하므로 내년 조정에서 제외하겠다”고 공언했다. 농식품부는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농수산물이 지목되는 것이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고등어처럼 쓸데없이 큰 규격을 조사해 물가에 착시현상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통계청은 2006년에 품목·규격을 바꾸면서 총 지수가 0.2% 하락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번 개편도 수치 하락 효과만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항목을 바로잡겠다며 전자사전을 삭제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2006년 개편 때 신설된 항목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