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일본인, 한국 연예인에 빠지다… 한류팬 세키 마스미씨의 한국 관광투어 동행취재
입력 2011-09-04 23:20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지난달 31일 열린 ‘2011 서울드라마어워즈’ 시상식의 객석을 가득 메운 1500여명 가운데 730여명이 한류(韓流)를 타고 건너온 외국인 관객이었다. 프랑스 내 한류 팬클럽인 ‘코리아커넥션’ 회원들과 삼삼오오 혹은 단체로 서울을 찾은 일본인들이 주를 이뤘다.
이 시상식에 참석한 세키 마스미(63·사진)씨는 요즘 명동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인 한류팬 중 한 명이다. 세키씨는 ‘서울드라마어워즈’를 주요 일정으로 하는 한국 관광 투어에 참여했다. 일본에는 한국의 연예 관련 시상식이나 팬미팅 등 행사를 관광 상품으로 판매하는 여행사가 많다. 세키씨가 선택한 건 2박3일짜리 상품이다.
첫날 도착해서 서울드라마어워즈를 방청하고 둘째 날 자유시간을 가진 뒤 셋째 날 출국하는 것이다. 세키씨 외에 100여명의 일본인 한류팬들이 이 패키지 관광에 참여했는데, 모두 여성이고 대부분 혼자 왔다. 이튿날 오전까지 그의 일정을 함께했다.
이른바 ‘한류팬’, 그중에서도 한국 연예인들을 흠모한 나머지 한국땅을 밟기까지 하는 외국인들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편견도 가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만난 세키씨의 첫인상은 팬이 아니라 평론가로 생각해도 될 만큼 지적이었다. 맹목적으로 흐르기 쉬운 팬답지 않게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매력’을 또박또박 열거했다.
“한국 연예인들은 친근한 일본 연예인들에 비해 훨씬 외모가 뛰어나지요. 또 눈물이나 웃음 등의 감정표현에도 솔직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 드라마는 스토리 전개가 극적이고 재미있어요.”
서울드라마어워즈 시상식을 방청한 날 저녁, 그는 한국인 지인과 저녁식사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처음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된 건 배용준씨가 주연한 ‘겨울연가’”라고 말했다. “당시 배용준씨의 인터뷰를 봤는데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면서 눈물을 보이더라. 지금은 한국 연예인들을 의식해서인지 일본 남자 연예인들도 가끔 우는데 당시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엔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와 가요 등으로까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혔다. 서울드라마어워즈 시상식에 출연한 연예인들 중에서는 “(박)유천을 좋아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시상식 결과를 마지막까지 알 수가 없는데, 여기선 상을 받는 출연자들만 와서 미리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어요.”(웃음)
세키씨는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동행한 한국인 친구가 통역 겸 안내 역할을 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택시를 한 번 탄 뒤 도착한 곳은 분당에 위치한 메모리얼파크. 배용준씨에 버금가는 한류스타 고 박용하씨가 잠든 곳이다. 묘지는 넓었지만 박씨의 묘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시아 각국에서 온 팬들이 다투어 꽃과 선물을 두고 가는 바람에 묘소가 눈에 띄었다. 세키씨는 신발을 벗고 조심조심 참배를 마친 뒤 눈물을 보였다. “5년 전 그와 공항에서 악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박씨가 6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악수를 했는데 정말 드문 일이었어요.”
그 다음 찾아간 곳은 강남이다. 드라마 ‘제중원’에 출연한 배우 박용우씨의 소속사 사무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땡볕이었고, 주위에 랜드마크가 있지도 않은 사무실을 찾기는 어려웠다. 세키씨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전혀요”라고 답했다. 사무실에는 박용우씨가 없었고, 이날 중 들를 계획도 없다고 했다. 세키씨는 이곳 직원에게 선물을 전달한 뒤 사무실을 나섰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세키씨의 오후 일정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배용준씨는 2009년 펴낸 여행기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 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책을 읽은 세키씨는 예전부터 이곳에 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세키씨는 “한류팬이라면 누구나 배용준씨의 여행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겨울연가’ 착륙 후 10년, 한류가 일시적인 붐이 아닌 문화현상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일본 지진 이후 증가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올 들어 100만명의 일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다. 이 중 상당수가 한류팬일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일본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 히시누마 다에코씨는 “일본에는 한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공급이 되는 데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기도 하지만, 최근엔 무분별한 진출로 고급 콘텐츠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해외 진출이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까지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키씨 역시 “한류에 열광하는 것은 주로 여자들이고 주류인 남성들은 아직까지 (한국문화를)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