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 얼굴 알리는데 108억원, 정책연구엔 16억원 ‘찔끔’
입력 2011-09-04 22:32
국민일보, 18대 국회의원 사용내역 최초 분석·공개
지난해 국회의원들이 쓴 정치자금은 모두 480억원이다. 의원 1명당 1억5900만원(분석대상 302명 기준)씩 쓴 셈이다. 정당보조금, 후원회기부금, 자산 등으로 구성된 정치자금 가운데 가장 큰 수입원이 후원금이다. 후원금은 유권자들이 정책개발 등 의정활동에 써달라고 건네는 돈이다. 국회의원들은 이 돈을 받아 어떻게 썼을까.
◇홍보행사비 108억원 vs 정책연구비 16억원=해마다 나라살림의 예산을 정하고, 씀씀이를 감시하는 게 국회의원의 주된 임무이지만 정작 의원들의 회계보고서는 허점투성이였다. 회계작성 원칙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기재하는 의원들이 수두룩했다. 한나라당 이춘식, 민주당 정동영,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 서갑원 전 의원 등은 덧셈도 제대로 안된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회의원들의 신고내역과 해당 영수증, 지출한 장소 등을 종합해 8가지 항목으로 재분류했다. 의원과 보좌진의 식사 다과비용 등은 식비로 처리했다. 의정보고회나 언론과의 만남 등은 홍보행사비, 차량연료와 리스비 등은 교통비, 직원과 인턴 격려금 등은 인건비, 문구 구입비, 정수기·복사기 임대료 등은 사무실 유지비, 도서구입비 신문구독료 토론회 등은 정책연구비로 처리했다.
분류 결과 홍보행사비가 전체의 22.6%(108억6449만원)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정책연구비는 3.5%(16억6060만원)로 가장 적었다.
소속 정당별로 봤을 때 한나라당은 지난해 전체 정치자금 지출 283억8920만원 가운데 정책연구비로 3.8%(10억6707만원)만 투입했다. 민주당(3.3%)과 자유선진당(1.6%), 민주노동당(2.3%) 등 야당도 여당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4선 이상의 중진의원들일수록 정책연구비가 적은 것도 특징이다. 초선(4.3%)에서 3선(3.4%)까지는 3% 이상을 유지했지만 4선 이상 의원은 2% 안팎으로 크게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정책연구비 씀씀이를 가장 아낀 의원은 4선 의원 그룹으로 전체 지출의 1.6%에 그쳤다.
◇의정활동의 최우선순위는 표심 관리(?)=의원들의 씀씀이는 ‘지역구 관리비용’에 집중돼 있었다. 홍보행사비에 이어 인건비(94억1934만원)와 유지비(81억9470만원) 등 지출비중이 높은 항목 대부분이 지역사무소 관리 등에 쓰였다.
특히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단체장 출사표를 던진 의원들의 경우 더 심했다. 광주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강운태 전 의원을 비롯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송영길(인천시장), 이광재(전 강원도지사), 이시종(충북도지사), 이계진(강원도지사 선거 출마) 전 의원의 경우 후보자 등록시점까지 불과 넉 달여 동안 전체 정치자금의 30.5%를 홍보행사비로 썼다.
교통비도 남용되긴 마찬가지. 국회의원은 금배지를 다는 순간부터 연봉(올해 기준 1억2440만원) 외에 유류비, 택시비 등 사무실운영비로 연간 8700만원씩 지원받는다. 사용처가 정해진 목적비이지만 일단 받으면 어디에 쓰든 용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밖에 의정활동을 위한 출장의 경우 KTX 등 어떤 열차로 출장을 가더라도 금액에 관계없이 국회사무처가 비용을 전액 보전해준다.
그럼에도 지난해 의원들이 정치자금을 동원해 지불한 교통비는 70억3237만원에 달했다. 고급 승용차를 렌트하다 보니 기름값과 수리비가 많이 들었다는 게 의원들의 설명이다. 심지어 광택비도 정치자금으로 지출됐다.
식비(49억2045만원)도 지역구 관리나 의원의 홍보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방문 때마다 지역단체 등과 어울리며 밥을 샀고, 지역구의 지지자들을 국회로 불러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정책연구비가 전체 정치자금 지출의 3.5%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며 “정치적 지지자들이 의정활동에 충실하라고 주는 게 정치자금인데 1인당 3600만원이 넘는 돈을 내용 없는 단순 홍보행사에 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