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1) 후원금 걷어 골프치나] 이종구 의원 식대 96만원, 알고보니 골프비
입력 2011-09-04 22:15
국민일보, 18대 국회의원 전체 정치자금 사용내역 첫 분석·공개
한나라당 이종구(서울 강남갑) 의원은 올 초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지난해 11월 20일 ‘식대’란 항목으로 96만5000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식대를 지출한 장소는 경기도 남양주의 근영농산㈜이란 곳이었다.
국민일보 탐사기획팀이 취재한 결과 근영농산은 ‘양주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업체였다. 토요일이었던 이날 골프장에서 밥값으로만 100만원 가까운 돈을 썼다는 보고서의 내용은 믿기 어려웠다. 탐사기획팀이 “밥값이 아니라 골프비 아니냐”고 확인을 요청하자 이 의원 측은 “지인들과 운동했다”고 골프 친 사실을 시인했다. 정치자금으로 골프비용을 지불한 뒤 이를 감추기 위해 골프장 이름 대신 운영업체 이름으로, 골프를 친 비용을 밥값으로 각각 표기한 것이다.
같은 당 구상찬(서울 강서갑) 의원은 지난해 3월 13일(토요일) 경기도 안산의 제일컨트리클럽에서 100만3500원을 결제했다.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는 ‘정치활동-정책 관련 자문’이라는 애매한 항목으로 신고했다. 취재 결과 정책 자문의 실상은 골프로 드러났다. 구 의원은 “골프를 치고 밥을 먹은 비용”이라고 털어놨다.
구 의원은 며칠 후 전체 금액 중 86만8500원에 대해 ‘결제 실수’라며 해당 금액을 정치자금 계좌로 다시 입금했다. 전체 비용 중 그린피(골프 비용)만 다른 자금으로 결제했다. 구 의원은 “그린피는 (정치자금으로 쓰면) 안 된다는 지적을 받고 취소했다”고 해명했다.
당초 골프 친 사실을 감췄던 이 의원도 뒤늦게 그린피를 반납하기는 했다. 이 의원 측은 올 초 그린피로 지출했던 비용을 다시 정치자금 계좌에 입금했다고 밝혔다. 골프치고 난 뒤 두 달여가 지나고서다. 이 의원 측은 “착오로 잘못 결제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의원의 개인 카드로 지불하려고 했는데 지갑에서 ‘실수로’ 정치자금 카드를 꺼냈다는 설명이다. 이 의원 측은 올해 말 선관위에 이 같은 내용의 사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골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정치자금을 쓴 정치인은 민주당 김영환(경기도 안산 상록을)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10여 차례, 적게는 9000원부터 많게는 40만5000원까지 모두 135만1500원을 경기도 안산의 제일컨트리클럽 등 골프장 2곳에서 사용했다. 김 의원 측은 “지역구 내에 호텔이 없어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등 손님 접대를 위해 가끔 (골프장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의 후원금으로 조성된 정치자금은 공적인 돈이다. 특히 정치자금은 공적인 정치활동에 국한해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본보 탐사기획팀이 선관위로부터 국회의원들의 지난해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제출 받아 분석해 보니 기대와는 동떨어진 지출이 퍽 많았다.
많은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유권자들의 후원금으로 조성된 정치자금을 정치활동과 무관한 용도로 지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내역을 보고서에 기록했다. 일부 의원들은 사적 용도로 지출한 뒤 몇 개월 후 해당 금액을 다시 입금하면서도 “바로잡았으니 문제될 게 없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자금 사용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인식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본보는 한국 정치의 맨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시리즈로 의원들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을 상세히 보도하기로 했다. 의원들의 정치자금 지출을 항목별로 분석하는 한편 적절치 않은 지출로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서도 낱낱이 지적할 예정이다.
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