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년 전통 울릉도 평리교회 이야기
입력 2011-09-04 19:39
[미션라이프] 연세가 지긋한 목사의 운전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절벽을 깎아놓은 듯한 비탈길. 차 한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인데도 거침없었다.
“차를 운행하지 않으면 우리 성도님들 예배드릴 수 없어요.”
‘대한민국 동녘의 빛’이라 불리는 울릉도. 북면 현포2리 평리침례교회를 담임하는 임종호(68) 목사 얘기다. 언덕에 위치한 교회는 마치 산과 절벽, 나무를 그려넣은 병풍에 들어간 그림 같다. 교회 주변의 집은 윗집과 아랫집, 옆집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윗집은 가수 이장희씨가 산다. ‘울릉천국’이라는 택호의 파란 지붕집이다. 육지 나들이가 섬주민에 비해 잦은 편이다.
“저기 너머 골짜기 골짜기마다 집들이 있어요.” 모두 30가구가 산다. 이 중 3분의 2 정도가 교회에 출석한다. 이장희씨도 ‘울릉천국’에 머무를 땐 교회에 출석해 예배드린다.
50대가 최연소 성도
지난 수요일 오후 6시20분. 임 목사가 승합차에 시동을 걸었다. 좁은 교회 마당을 빠져나와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조심스레 달려 가장 먼저 서귀분(85·집사) 할머니를 태웠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빠져나오니 해안 도로를 만났다. 승합차는 저 만치 벤치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김갑선(88·집사) 할머니 앞에 멈췄다. 힘겹게 문을 열고 차에 오른 할머니.
“목사님, 내 이발하고 왔시오.” “어쩐지 집사님 오늘 아주 이쁘시네.”
다시 비탈길로 들어섰다. 김 할머니와 함께 ‘이발’한 오복연(82·집사) 할머니가 차에 올랐다.
그렇게 20분 정도 운전을 했고, 다섯 명의 성도를 태워 교회에 도착했다. 6시45분에 수요 예배를 드렸다. 모인 성도라곤 80대 노인 다섯 명과 60대 중반의 부부, 박영신(60) 사모가 전부였다. 그래도 주일에는 전 교인 20명이 출석한다. 대부분 70~80대 노인들. 최연소가 50대 중반의 집사 부부다. 금요기도회에는 서너 명의 어르신이 참석한다. 70세를 앞둔 임 목사는 교회에서 ‘청년’이다.
101년된 교회
평리침례교회는 1910년 10월 20일 성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창립됐다. 42년 일제의 박해로 예배당이 철거당하기도 했으나, 3년 뒤 다시 모이면서 재창립했다. 한국교회에 성령의 불길이 크게 일던 70~80년대 이 교회도 부흥했다. 어린 자녀들까지 200명 가까이 출석했다. 또 교회에서 고등성경학원을 실시, 다수의 목회자도 배출했다. 이 교회 출신 목회자만 20여명에 이른다. 평리침례교회는 울릉도 기독교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런 이 교회가 지금은 멈춰있다. 젊은이는 육지로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 “그게 농촌교회의 아픔입니다.” 현실이 이러한데, 임 목사는 왜 평리로 왔을까.
“여기 뒷바라지하려고…”
그는 육지(인천)에서 30년간 목회했다. 노년에 조용한 곳에서 목회하며 은퇴를 맞이하자고 생각한 게 배를 탄 이유다. 4년 전 평리침례교회에 부임했다.
그러나 육지에서 온 임 목사가 섬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섬사람들의 마음 문을 여는 데 시간이 걸렸다. ‘목사님이 이번에는 얼마나 있을라나?’ 성도들의 그런 눈빛을 자주 접했다. 임 목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목회자가 자주 바뀌었으니….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그는 강단에서 수시로 선포했다. “저는 여러분을 뒷바라지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시는 그 날까지 믿음 잃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그러다 먼저 가 계시면, 저도 곧 뒤 따라 갈게요.”
진심은 통했다
임 목사는 그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고령의 성도가 아프다고 하면 밤 낮 가리지 않고 차를 몰아 보건소로 달렸다. 약이 떨어졌다고 하면 당장 구해왔다. 농사를 짓는 데 일손이 부족하면 거들었다. 도시 운행만 해온 임 목사에게 섬마을길 운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가 오거나, 어두워지면 한치 앞 비탈길이 보이지 않아 사고도 여러 번 났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철 눈길만 빼곤 못 가는 곳이 없다.
임 목사의 이런 열정에 성도들도 마음의 빚장을 풀었다. 교회 옆집에 사는 이진우(83·장로) 할아버지는 텃밭까지 내줬다. 목사 부부는 무우 배추 등을 심었다. 농사를 짓고, 교회 정원을 가꾸면서 어느새 임 목사는 섬 마을 농부가 다 됐다.
비전은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비전,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 힘이 넘쳐난다. 임 목사에게 비전에 대해 물었다. “소망이나 비전도 자라나는 싹이 있어야지요. 다음세대를 키운다고들 하는데, 여기에선 힘들어요. 둘러 보세요. 젊은이가 있나.”
그러면서도 임 목사의 음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비전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여기 어르신들과 함께 은퇴를 준비하는 것이지요. 그분들이 삶의 종착역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끝까지 안내하는 게 저의 임무입니다. 성령충만하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저의 비전이지요.”
울릉도=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