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지나는 현대인의 소외 그리고 우울… 학고재서 독일 작가 팀 아이텔 展
입력 2011-09-04 17:35
독일 출신의 팀 아이텔(40)은 낯선 장소에서 방황하는 여행자, 어두운 뒷골목을 배회하는 노숙자, 지쳐 잠든 노동자, 망연자실한 모습의 청년 등을 화폭에 옮기는 작가다. 그는 도시의 거리를 관찰하며 직접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다.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세밀하게 드러내지 않고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현대인의 소외, 고독, 상실 등을 표현한다.
독일 현대회화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뉴 라이프치히파’ 작가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의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10월 23일까지 열린다.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 제목은 ‘더 플레이스홀더스(The Placeholders)’로 ‘하나의 장소, 상황 속에 놓인 주인공들과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그림에 담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제작되는 그의 작품은 우리가 스쳐 지나거나 외면하는 것을 돌아보게 하는 회화의 힘을 지녔다. 16점의 출품작 가운데 ‘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는 인물들이 각각 등지고 있거나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우울함,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12개의 작은 작품이 모여 경기장이라는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스타딘(Stadien)’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간에 흡수되지 못한 채 겉도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안개’ ‘관찰자’ ‘간이침대’ 등 소소한 삶의 단면을 그린 작품들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만 않다. 푸른 하늘 아래 모래밭에서 허리를 구부린 두 사람을 그린 ‘검은 모래’에 스며드는 청명한 빛이 아름답다(02-739-4937).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