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고독 속에서 피어난 불굴의 예술혼… 요절한 천재작가 손상기 展
입력 2011-09-04 23:18
1949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손상기(사진) 작가는 세 살 때 구루병(척추가 굽어지는 병)을 앓은 데다 초등학교 때 나무에서 떨어져 평생을 척추장애와 함께 살았다. 그는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원광대 회화과에서 그림을 배웠다. 고향 여수의 바다와 어시장을 소재로 작업하다 79년 상경한 뒤 아현동 홍등가와 도심 변두리 삶을 ‘공작도시’ 연작으로 표현했다.
81년 서울 동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그는 이듬해 ‘공작도시-신음하는 도심’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한국미술대전 입선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류 화단과 타협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던 그는 김기창 박고석 전혁림 등 원로작가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83년에는 미술평론가들이 선정한 ‘문제작가’에 오르기도 했다.
병원을 오가며 겪은 가난과 고독을 그림과 글로 승화시킨 그는 높고 가파른 축대와 계단,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사이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 등으로 서울 달동네를 묘사했다. 장애물이 많은 서울 전체가 생활하기에 벅찼던 작가는 “이런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고 적었다. 병마와 싸우며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88년 서른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작가는 떠났지만 작품은 남았다. 89년 ‘요절한 문제작가 그 천재성의 확인’, 90년 ‘누드와 인간’, 94년 ‘요절한 문제작가 오윤 손상기’, 2004년 ‘낙타, 사막을 건너다. 불굴의 의지, 찬란한 예술-국민화가 손상기’, 2008년 ‘시들지 않는 꽃, 손상기 20주기’ 등 전시가 잇따라 열렸다. 생전에 작가와 돈독한 친분을 쌓은 엄중구 샘터화랑 대표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절한 천재작가 손상기의 화업(畵業)을 돌아보는 전시가 여수 진남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오는 16일까지 열린다. 손상기 기념사업회(공동회장 김홍룡·오병종)가 ‘시들지 않는 꽃’이라는 타이틀로 마련한 전시에는 작가의 유작 1500여점 가운데 대표작과 미공개작 등 9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 2일 개막과 함께 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장 서성록) 주최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석우 겸재정선기념관 관장, 서영희 홍익대 교수, 김진엽 미술평론가 등이 참여한 학술세미나에서는 손상기 기념관 및 미술관 건립사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손상기 기념사업은 여수 시민 300명으로 시작된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로 진행 중이다. 이석우 관장은 “생명력을 지닌 작품을 통해 진정한 예술가상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나의 어머니’ ‘초조’ ‘가족’ ‘귀가행렬’ 등 대부분이 어두우면서도 우울한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서도 ‘따스한 빛’ ‘성하(盛夏)’ ‘시들지 않는 꽃’ 등은 다소 밝은 이미지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가 하면 그의 말기작 ‘영원한 퇴원’은 불우했던 작가가 죽음을 예상하고 그린 것 같아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061-681-5999).
여수=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