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84) 구멍 난 고대 토기의 비밀

입력 2011-09-04 17:35


구멍이 뚫린 항아리 모양의 고대 토기를 본 적이 있습니까. 5∼6세기 백제 및 가야 지역, 특히 영산강 유역에서 가장 유행한 기종(器種·그릇 종류)의 하나인 이 토기들을 보면 ‘아래 중간 부분에 무슨 용도로 구멍을 뚫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둥그런 몸체 중앙에 대롱 등을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있는 이 토기들을 ‘유공소호’(有孔小壺·사진)라고 합니다.

이 토기는 당시 유력 인사의 고분 또는 주변의 주거지 등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몸체 바닥이 편평한 것, 몸체 아래에 받침다리가 붙은 것, 몸체에 장식이 붙은 것 등 갖가지 형태가 확인돼 토기 제작이 얼마나 다양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졌는지 짐작케 합니다. 구멍의 크기를 보아 대나무로 만든 관을 끼워 안에 든 것을 마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목에서 점차 넓어지는 아가리를 갖춘 작은 단지인 유공소호의 용도는 실용기와 의식기로 분류할 수 있답니다. 실용기라면 물 또는 술을 따르는 주전자나 기름등잔으로 사용됐을 수 있으며, 의식기라면 맹세나 의식 때 피 또는 술을 나누어 마시는 그릇이었거나 고배(高杯)처럼 제사용일 수 있다는 것이죠. 생활용이든 의식용이든 분명한 것은 모두 구멍이 있다는 겁니다.

이 구멍에 빨대 같은 것을 꽂아 뭔가를 먹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지만 전북 고창과 부안, 경남 창원 의령 함안 등에서 출토된 유공소호 150여점 중에서는 구멍에 꽂은 실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궁금증을 더합니다. 반면 일본 오사카 요쯔이케 유적에서 구멍에 나무 깔대기가 꽂혀 있는 유공소호가 출토돼 주전자의 기능이 강했음을 알 수 있지요.

일본 유공소호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고고학계에서는 보고 있답니다. 일본 스에무라 15호 가마에서 출토된 것은 전남 나주 복암리 3호분에서 발굴된 5세기 말 토기와 흡사하거든요. 영산강 유역 토기 문화가 일본 토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죠. 그러나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는 일본에서 제작된 것도 나와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의 돌방무덤에서도 일본산으로 여겨지는 것이 가야계·영산강계·신라계 토기들과 함께 출토된 바 있습니다. 이 토기의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5세기 전반부터 6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유공소호는 경상도와 전라도, 더 나아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라는 데 의미가 있답니다.

국립광주박물관 선사문화실에서 호남지역 출토 유공소호 5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알기 쉬운 고고학 시리즈’의 하나로 ‘고대인의 바람과 다짐이 깃든 성스러운 토기, 유공소호’라는 제목으로 11월 27일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고대인들은 구멍 난 토기를 통해 어떤 것을 기원했을까요. 인간 누구나 염원하는 풍요와 안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