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마저 간절함으로 꿈틀거린다… 조수미 새 앨범 ‘리베라’

입력 2011-09-05 01:43

말하자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여인이다. 능란한 만큼 젊어진다. 풍만한 만큼 청순해진다. 세계 각지에서의 다양한 경험으로 어떤 조건에서도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두둑하다. 새 앨범 ‘리베라(Libera·자유)’에서 들려오는 조수미의 목소리가 주는 인상이다.

지난 3월 체코 프라하 루돌피눔에서 온드레이 레나르드가 지휘하는 프라하 필하모닉과 녹음한 조수미의 이번 음반은 유니버설에서 도이치그라모폰(DG) 레이블을 달고 나온 세 번째 앨범이다. 2008년의 ‘미싱유(Missing You)’나 2010년의 ‘이히리베디히(Ich Liebe Dich)’와 구별되는 이번 음반의 특징은 역동성이다. 앞서 두 음반이 정적인 정서의 풍경을 담았다면 이번 ‘리베라’는 적극적인 사랑의 움직임이 동선을 이룬다. 그리움마저도 끓어오르는 듯한 간절함으로 꿈틀거린다.

첫 곡인 ‘달의 아들(Hijo De La Luna)’은 스페인의 팝 그룹 ‘메카노’의 작품. 속삭이는 듯한 조수미의 가창을 들으면 어둠 속에서 윤기를 내는 고음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발페의 오페레타 ‘보헤미아 소녀’ 중 ‘나는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네’를 조수미는 1999년 에라토 레이블에서 녹음했다. 당시 소극적이고 풋풋한 여린 가창을 들려줬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풍부하고 짙은 색채감에 더욱 자신감 있는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앨범의 키워드는 ‘집시’이기도 하다.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집시의 사랑’ 중 ‘심벌즈 소리가 들리면’에서 비장함을 간직한 채 점점 빨라지는 템포로 조수미는 집시 특유의 슬픈 듯 기쁜 듯 승화되는 애환을 관능적으로 표출했다. 베네딕트의 ‘집시와 새’는 자유로운 새의 영혼에 집시의 풍경을 오버랩시킨다. 집시의 여왕은 뭐니 뭐니 해도 카르멘일 것이다. 비제 오페라 ‘카르멘’의 주옥같은 주제들을 모아 11분 분량으로 김택수가 편곡한 ‘집시 카르멘’은 이 음반의 백미이다. 고음은 고음대로 잘 벼려놓은 채 중음역을 도탑게 보강한 가창이 일품이다. 가끔은 ‘가르릉’ 대는 페르시아 고양이의 유연함도 연상된다. 슬라브 땅에서 슬라브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것도 곡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레하르의 ‘유쾌한 미망인’ 중 ‘빌랴의 노래’와 ‘입술은 침묵하고’에서는 부채를 입가에 대고 볼에는 복점을 찍은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빈 오페레타의 호화로움이 느껴지고, 파야의 ‘허무한 인생’ 중 ‘스페인 춤곡 1번’은 고조되는 이베리아 반도의 정열을 표현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메들리는 긴장을 풀어주는 탄산음료 같은 역할을 하고, 마지막 보너스트랙으로 담긴 ‘통일의 노래’는 언뜻 진부하게 느껴지는 ‘우리의 소원’과 ‘애국가’ ‘아리랑’을 버무려 놓았다. 한국 가곡을 부를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던 조수미의 요청과 열망이 이 곡을 수록하게 된 계기였음이 분명하다. ‘챔피언스’에서 느껴지던 들뜬 감정이 여기서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그런데 보너스트랙을 듣고 나면 숙연해져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잃은 것 같다. 옥에 티라면 티랄까.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