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영범] 非정규직, 比정규직
입력 2011-09-04 17:49
요즈음 중앙부처 공무원 중 가장 바쁜 사람의 하나가 비정규직 문제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양성필 고용차별개선과장이다. 여야는 물론 정부까지도 비정규직 대책 수립에 부심하고 있으니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민주당은 2017년까지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을 현재 50%에서 30%까지 낮추고,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정규직의 80%까지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까지 올리고, 영세사업장의 저소득층 근로자에게 건강보험 등 공적보험의 근로자 부담분 절반 정도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부가 기업의 자율성 침해 및 사회보험료 지원에 대한 재원 조달의 문제점을 이유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당정 간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대책은 돕고자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일부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를 떨어뜨리고 우리 사회의 일자리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 급여를 정규직의 80%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추가적인 부담이 약 37조원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기 때문에 경영계는 기업의 막대한 추가 부담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이 박사급 인력인 연구소에서 일부 비정규직이 보조적인 일을 하고 있다면 보조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에게 박사급 인력의 80% 급여를 주라고 할 수는 없다. 개별 사업주들은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거나 직종 분리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를 비교할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2007년에 비정규직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자 은행 등 많은 기업에서 정규직 근로자보다 처우는 떨어지나 고용이 안정된 무기계약 근로자라는 직군 형태를 새로 만들어 대응했다.
또한 많은 기업은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맡고 있는 사내 업무를 용역이나 사내 하도급 또는 파견회사에 일괄 위임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처우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비정규직 문제는 여성, 청소년, 노령 근로자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심각히 고민해 해법을 찾아야 하는 사회 현안이다.
그러나 비(非)정규직 문제를 비(比)정규직 시각에서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연봉 8000만원인 SC제일은행 정규직 근로자의 은행권 최장기 파업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메우느라 연봉 2000만원 정도를 받는, 전체 근로자의 27%인 계약직 근로자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3년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한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근로자 올해 평균 연봉은 일시적 성과급을 포함하고 있지만 9000만원이다.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 강력한 노조에 의해 과도한 처우를 쟁취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에 비교하여 비정규직 대책을 세우는 것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것이다.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고 비정규직에 의존하는 경영을 하게 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요인을 개선하면서 비정규직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한 비정규직부터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고용 안정을 도모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 규모부터 여야 간에 합의해야 한다. 비정규직 규모를 민주당은 전체 근로자의 50%로 보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민주당 정부 시절인 2002년 노사정합의(민주노총은 빠졌지만)에 의해 34%로 보고 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