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희선] 짜장면과 가습기

입력 2011-09-04 17:54


지난주 흥미로웠던 뉴스 중 단연 첫째는 ‘짜장면’에 관한 것이었다. 입으로는 ‘짜장면’이라 하면서 글로는 ‘자장면’이라 써야만 했던 오랜 답답함을 이제 끝내도 된다니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뉴스가 전해지자 나와 비슷한 생각인 사람이 많았는지, 인터넷이며 SNS 공간에도 ‘짜장면 찬가’가 울려 퍼졌다. 글을 쓰고 고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이 뉴스는 상식을 깨뜨리는 것이자, 당장에 생활의 변화로 다가왔다.

국립국어원이 이번에 표준어로 인정한 단어는 39가지나 된다. 복숭아뼈, 손주, 눈꼬리, 먹거리, 오손도손, 찌뿌둥하다 등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맞춤법상 금지된 것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뉴스를 접한 바로 다음날로, 마침 교정을 마쳐둔 원고를 다시 뒤적여서 ‘살갗냄새’라는 영 개운치 않던 표기를 찾아 ‘살내음’으로 바꿔 버렸다. 비로소 문장을 읽는 데 막힘이 없어지고, 오랫동안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체증도 가시는 듯했다.

세상에는 하루아침에 상식을 뒤엎는 뉴스들이 종종 등장한다. 짜장면 뉴스처럼 반가울 때도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지난주에 주목했던 또 다른 뉴스 중에 끔찍한 예가 하나 있다. 임산부 환자들에게 주로 발생했던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한 보건복지부 발표가 그것이다. 뉴스에서 몇 가지 제품을 보여주는데, 그 중에 내가 한때 아이를 위해 즐겨 쓰던 제품이 눈에 띄어 아연실색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던 10여년 전에는 가습기가 필수 육아용품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실내 공기가 건조하면 아기가 숨쉬기 힘들고 호흡기 질환에 걸리기 쉽다고 해서 너나없이 따뜻한 김이 나는 온열가습기를 사서 잠자는 아이의 머리맡에 켜두곤 했다. 당시 가습기에 세균이 쉽게 번식한다는 뉴스가 종종 나와 매일같이 물을 갈아주면서 ‘가습기 친구’라는 세정제를 작은 뚜껑으로 한두 컵씩 함께 넣어 주었다(제품 사용법에 적힌 그대로!). 아이가 얼마 먹지도 않고 밀어낸 젖병을 하루에도 수없이 삶아 댄 것도 아이 건강을 위해 지켜야 했던 생활수칙 중 하나였다. 그런데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 와서 내가 안전하다고 믿고 행했던 그 행동 때문에 아이가 큰일 날 뻔했다는 말을 뉴스가 전하고 있지 않은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만 생각하니 “에고, 이 헛똑똑이야”라고 내게 자주 핀잔을 주는 엄마 목소리가 떠오른다. 지난날 아이 방에 젖은 수건이며 기저귀를 구석구석 널고 있던 엄마에게 “지저분하게 그게 뭐야. 요즘은 가습기로 다 돼”라고 툴툴거릴 때도 엄마는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오늘 통용되고 있는 규칙이나 관습, 상식, 혹은 시장의 제품들이 다 안전하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되 맹신은 안 된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들의 바람, 내 몸의 감각이 옳다고 말해 주는 것을 찾아서 사는 노력을 해야겠다.

박희선 생태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