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목회 현장-경북 군위 ‘작은교회’] ‘교회는 작게, 생명운동은 크게’ 새 모델 일궈
입력 2011-09-04 17:42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가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교회성장이후기(Post Church Growth Period)를 지나고 있다.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그럼에도 이 땅에는 복음을 붙들고 참된 목회를 펼치는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변함없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노력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환경은 다르지만 각자의 장소에서 소망의 목회를 펼치는 교회를 찾아본다.
교회 이름을 ‘작은교회’로 지었다. 그 이름으로 28년을 지내왔다. 강산이 여러 번 변했다. 교회는 더 커지지도, 더 작아지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교회로 ‘존재’했다.
지난 1일 경북 군위 매곡리에 들어서니 다양한 내용이 적힌 팻말이 보였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작은교회’란 이름 밑에는 ‘매곡리 자연학교’ ‘로칼푸드 착한살림 물류점’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팻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목가적 분위기가 넘쳤다. ‘2011 된장학교’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마당에는 각종 농기구가 널려 있었고 교인들의 이름이 붙은 텃밭들이 보였다. 목공실과 도자기 가마가 인상적이었다.
작은교회 담임 곽은득(65) 목사와 강철영(58) 사모가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부부의 미소가 참 맑았다. 햇빛이 잘 드는 예배당에 앉아 곽 목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예장 통합 소속으로 1983년 당시 37세였던 곽 목사는 대구에 작은교회란 이름의 교회를 개척했다. 목회자가 된 이후 곽 목사가 붙잡은 말씀은 마태복음 25장40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작은 공동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곽 목사가 대구 단칸방 집에서 몇 명의 성도들과 함께 개척한 교회가 바로 작은교회다.
“그래도 ‘작은교회’란 이름은 자극적이네요. 저항적이기도 하고요. 아예 성장을 거부한 것 아닙니까?”
“신학교 다닐 때부터 항상 새로운 교회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교회의 모델은 작은 교회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모든 형태의 교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작은 자들을 진실하게 섬기기 위해서는 교회 시스템 자체가 작아야 한다고 확신했어요.”
곽 목사는 대구에서 농촌중심의 생명 목회를 펼치다 자신이 아예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사역해야겠다고 생각, 99년에 매곡리의 3966.9㎡(1200평)의 땅을 매입했다. 작은교회를 매곡리로 이전하고 곽 목사 부부가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매곡리 땅을 이용해 자연학교를 열었다. 매곡리 자연학교에는 농사체험과 자연식 요리 만들기, 서각, 도예, 천연염색, 생태집짓기 등 6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이 같은 체험교육에 각종 인문학 공부를 덧붙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꽤 알려져 연간 총 2000여명이 방문하고 있다. 작은교회 교인 수는 15명 남짓.
“성도 대부분은 인근 대구와 칠곡에서 옵니다. 교인 수는 적지만 바쁘게 지냅니다. 농사지으면서 2000여명의 ‘교회 밖 성도’들을 대상으로 목양해야 하니까요.”
작은교회는 규모는 작았지만 하는 일들은 큰 교회 못지않았다. 최근에는 지역 소농들을 살리기 위해 ‘착한살림’이라는 이름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호응이 좋다고 한다. 벌써 칠곡과 청주, 천안 등지에 전문 매장이 생겼다. 도시민들이 귀농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25집 커뮤니티운동’도 펼치고 있다. 매곡리에 25가정의 귀농자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죽어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한 차원이다. 10가정이 신청했다.
“요즘 한국교회 내에 부임지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목회자들이 많은데요…. 목회자 수급불균형이 더욱 심각해질 것 같습니다.”
“몸집을 줄이면 됩니다. ‘작은 교회’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면 됩니다. 목회자건, 성도건 하나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마음 좇다보면 할 일이 생깁니다.”
그는 남이 가지 않은 곳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젊은 목회자들이 영적 파이팅을 내서 농촌에 뛰어들 것을 권했다. “요즘 농촌에는 누구도 가려 하지 않습니다. 농업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국교회 공동체가 거듭날 수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희망은 싹틀 겁니다.”
그는 건강한 작은 교회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목회자가 지역을 기반으로 일을 하면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은 교회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급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속 사회에서 복음을 붙들고 사는 영적 저항정신이 생깁니다.”
곽 목사는 도자기를 굽는다. 목공도 보통 실력을 넘는다. 그는 목회자가 성경 통달은 물론이고 문사철(文史哲)에도 능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앙의 예술화, 예술의 신앙화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아야 합니다. 실제 살아내는 이야기를 해야 하지요. 남의 것을 자기 목회현장에 적용하려 해서는 평생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꼭 도사 같은 말만 하시네요.”
“(하하) 목사는 도사지요. 시대의 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도사에게는 독특한 내공이 있어야 하지요. 상상력과 통찰력 등 남이 갖지 않은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의 사람들을 복음으로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요.”
매곡리의 ‘작은교회’. 그 이름으로 28년을 지내면서 참 많은 ‘주의 일’을 하고 있었다. 교회를 떠나며 입구 팻말을 보고 말했다. “작은교회야, 고맙구나, 여태껏 살아줘서….”
군위=글·사진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