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학자 백소영이 만난 사람] 기도하는 작가 정연희

입력 2011-09-04 17:45


하나님은 오늘도 싸우신다, 내손잡고…

언젠가 영국의 여성신학자 도로시 세이어즈의 서평을 쓰며 난 이렇게 말했다. “편견과 전제에 사로잡힌 동시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천재들은 빛나는 별을 가슴에 안고 피 흘리며 사는 법”이라고. 그러나 틀렸다. 시대가 알아보고 대중이 사랑해도 펄펄 끓는 예술혼과 반짝이는 창조적 지성을 가진 이들은 언제나 영혼의 민감성으로 인해 피 흘리며 사는 법이더라.

소설가 정연희(75) 선생을 만나고 든 깨달음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삼복더위도 아랑곳 않고 앞치마를 두르고 맛난 닭볶음탕을 준비하신 여느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 안에 어찌 그리 생기와 에너지, 그리고 폭발할 듯 빛나는 별이 담겨 있는지.

“도대체 얼마를 더 하셔야 이 처절한 싸움을, 이 피흘림을 끝내시렵니까?” 그리 내지르며 살고 있다 했다.

‘신앙은 매일 매순간의 싸움’인데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아직 해답이 없어’ 지금도 자신의 자아는 하나님께 대든다는 이. 유난히 불면증이 심한 아내 곁에서 잠들 때까지 철학을, 신학을 조근조근 말해주던 남편을 2008년 불현듯 잃고 비로소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했다. 그의 급작스런 부재가 너무나 잔인하여 선생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눈을 돌리지 않으심을 알면서도 나온 입이 들어가질 않는다” 고백한다. “이 심술첨지! 알았어요!” 집으로 향하는 경기도 안성 백암행 버스를 타고 홀로 돌아오던 밤길, 급작스레 발 한 짝이 젖은 흙길에 움퍽 빠졌을 때 얼른 깨달음을 주셨다. 너 살 생각이나 하라고. ‘신앙 초기에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안으시던 하나님이신데 왜 이리 따듯하지 않으시나’ 가슴 치며 하나님께 따지듯 묻는다 하지만, 실은 그녀는 “뜻을 똑바로 가르쳐 주세요!”하며 하나님께 온몸으로, 온 영혼으로 말을 걸고 있는 중이었고 언제나 기민함과 민감함을 가진 그녀의 영혼으로 말씀을 받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간음의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생입니다.” 소설 ‘주홍글씨’의 여주인공 가슴에 단 A자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영혼과 몸에 ‘간(奸)’자를 찍어주셨다 했다. 이 낙인이 있는 한 다른 짓을 할 수 없노라 했다.

그는 이화여대 국문과 3학년 때 화려하게 등단하고 이듬 해 같은 대학 문리대를 수석 졸업한 수재였다. 곧바로 수습기간도 없이 기자가 되어 세계 각국을 다니며 여왕 대접을 받던 젊은 날들. 그랬던 그녀가 1973년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을 맞았다. 서른여덟이었다. ‘도대체 이게 왜 40일 불구속에 72일 재판할 거리인가’ 하는 이유도 모른 채.

“하나님께조차 들키기 싫었던” 사적인 연애사를 온 천하에 다 드러내야만 했던 그 일을 계기로 선생은 비로소 인생의 근원적 물음을 묻게 되었다. 법정에 모인 수많은 사람 중에 ‘죄수’의 배역으로 홀로 서서 처절히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사랑이 빛인데, 빛을 아직 못 보았으니 자라지 않았었죠. 인식의 문이 열렸을 리 없죠.” 이 세상의 가장 큰 장애는 ‘사랑 없음’이라는 그녀.

그녀가 복중에 있을 때 아들을 잃었던 어머니에게는 ‘오라비 잡아먹은 년’이었다. 사랑받지 못했던 유년시절의 끝자락에 겪은 6·25의 참상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묻게 했고, 하여 처음 쓴 소설이 파계하는 수녀 이야기(‘파류상’)였다. “변화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어요. 변화를 찾아가지도, 찾아오는 변화를 받아들이지도 않는 편이죠. 그건 사랑에 자신 없는 사람의 약점입니다.” 때문에 인생을 늘 ‘방어기제’로 살아갔다.

그랬던 그녀였으니 죄인으로 법정에 선 극단의 상황에서 절실함과 간절함으로 처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응답되며 모든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차라리 두려움이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신 분이라면 우리를 이 질곡에서 한 발만이라도 건지게 해 주세요.” 그 외침을 듣고 그녀와 연인을 돌아본 하나님의 사랑이 무서웠다. 극적으로 풀려난 그 변화가 두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새사람이었다. “다른 것이 기적이 아닙니다. 매 순간의 현실이 보인다는 것, 이게 기적이에요. 하나님을 알기 전, 38세 이전의 정연희에게는 없던 것입니다.” 이후 방언도 받고 기적 체험도 숱하게 했다. 그러나 ‘기적이 곧 신앙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은혜 받고 그게 능력이 되고, 그리고 또 그로 인해 망하게 되는 일들을 숱하게 보아오면서 물었다. 신앙, 그것은 믿고 바라는 삶인데, 하나님을 앙망하는 삶인데 어찌 이럴까? 교회도 목회자도, 무엇보다 자신도 자꾸 넘어짐이 실망스러웠다. 하여 ‘살면 살수록 가짜 예수쟁이인 것 같아 괴롭다’는 그녀.

그런데 난 어찌 그녀의 말에서 ‘다 되었다’ 자만함이 없는 진정한 기독인의 고백을 듣게 되는 걸까? 신앙이라 하여 어찌 늘 위로만 날아오를까. 역설이 있고 모순이 있는 것이 생명의 법칙 아니던가. 늘 하나님의 현존하심 안에 있는 그녀이니 날아올라도, 바닥을 쳐도 언제나 ‘그의 현존 안에서’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현존은 억지세례 받았던 날과 교통사고로 췌장이 터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날이 같았다는 것을 기억해 내는 순간 더욱 명확해졌다. 재세례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거다. 죽음의 순간 영혼 가운데 들려주셨다는 이사야서의 말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하셨던 그 말씀을 놓지 않는 한 그녀는 언제나 ‘신앙의 사람’ 아니겠나.

그녀의 집 2층 기도실에는 3년 전까지 함께 무릎 꿇고 기도와 성경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을 두 자리가 여전히 나란히 놓여있다. 너무나 사랑해서 둘 사이에 아이조차 허락지 않았던 쉘던 베너컨이 아내를 병으로 잃고 나서 몸부림치다 그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너무 같이 있고 싶었던 사람의 부재이기에 ‘잔인’하지만 그 부재 이후 영원을 바라보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비’였다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잔인한 자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정연희 선생 역시 이제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다. 둘이 행복했던 이 집은 이제 여럿이 행복할 공간으로 내어 주리라. 파푸아뉴기니에도 다녀올까 한다 했다. 일을 같이하며 알게 되었던 이민아 선교사와 그녀의 남편 문성 선교사가 수십 년간 섬겨온 현장이라 하는데, 선생만이 가진 영혼의 민감성이 읽어낼 이야기들이 벌써 기대된다.

“하나님이 싸우신다는 걸 알아요. 내 손 붙잡고….” 돌아오는 길에 손수 따서 들려주신 꽈리를 곱게 걸면서 난 그녀의 말을 기억했다. 한동안 돌보지 않았던 정원 ‘삼희(三喜)동산’은 잡초가 예쁜 꽃들을 다 잡아먹었는데도 사랑의 손길을 주었던 식물들은 꽈리처럼 살아남았다. 그 식물처럼 정연희 선생은 펄펄 끓는 생명력을 지닌 영혼과 창조적 지성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물으며 살아 새로운 신앙고백을 계속 지어나가리라. 별처럼, 꽃처럼.

정연희

소설가. 19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파류상’을 통해 등단. ‘불타는 신전’ ‘난지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화진’ 등 다수.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뤘다. ‘유주현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수상.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역임. 서울 그루터기교회 권사. 경기도 안성에서 창작활동을 한다.

백소영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 현재 교회와 기독교 단체 특강을 통해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우리의 사랑이 의롭기 위하여’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 ‘드라마틱, 예수님과 함께 보는 드라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