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독재자, 얼굴 쥐·개로 묘사… 거리에 넘치는 ‘카다피 풍자 그림’

입력 2011-09-02 21:08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그림을 같이 그릴 한국 화가는 없나요?”

1일 오후 2시(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흰색 곱슬머리의 파리드 아부 앗자(47)는 ‘승리’라는 뜻의 나스르 거리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이민국 사무관으로 20년 넘게 일했던 그는 지난 2월 시민들이 카다피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오자 공무원 신분을 벗어던지고 혁명 대열에 뛰어들었다.

특히 카다피 관저가 있는 밥 알아지지아가 함락되고 시민군의 깃발이 올라가면서부터 동네 벽이란 벽은 다 찾아다니며 붓칠을 하기 시작했다. 카다피의 42년 독재가 막을 내린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내 심장에 리비아 있다’ 같은 활자 그림부터 카다피 특유의 머리 모양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캐리커처까지 무엇이든 그렸다. 독재의 끝과 리비아의 자유를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떤 그림이든 행복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하지만 그리고 싶은 대로 다 그릴 수 없었죠. 그동안 그린 건 베두인이나 낙타뿐입니다. 하지만 카다피 시대가 끝나면서 표현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카다피의 행방은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어도 묘연하지만 카다피 그림은 트리폴리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앗자 말고도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리비아 거리의 화가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경찰서, 군부대, 밥 알아지지아 요새, 쓰레기장, 화장실 등 벽이 있는 곳이라면 광대, 쥐, 드라큘라, 개 등에 비유한 카다피 얼굴이 어김없이 그려져 있다.

시민을 쥐새끼라고 비하하고, 국민의 혈세를 독식한 독재자를 이번엔 시민들이 그림으로 마음껏 풍자한 것이다.

카다피가 사용해 온 녹색 국기 대신 빨강·초록·검정으로 이뤄진 시민군의 삼색기도 벽화 속에 휘날렸다. 앗자는 얼마 전부터 대학에 다니는 첫째 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리비아 혁명을 기리는 그림을 대를 이어서까지 그리고 싶어서다. “영원한 독재자는 없다는 진리를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합니다. 리비아 방방곡곡에 쉐쇼파(카다피의 우스꽝스런 머리를 비하한 아랍어) 그림을 그릴 겁니다.”

앗자는 한국 화가 중 카다피 그림을 같이 그리고 싶은 사람을 찾으면 연락을 달라며 기자에게 이메일 주소를 건넸다.

트리폴리(글·사진)=노석조 특파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