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세계육상] ‘깜짝 금’ 주인공들 알고보니 ‘전향자들’

입력 2011-09-02 18:41

‘종목 바꾸길 정말 잘했네.’

1일 탄생한 이변의 주인공들 중에는 종목을 전향한 덕분에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이 유난히 많았다. 부상 혹은 자국 선발전 경쟁 등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종목을 바꿨지만 결국 바꾼 종목이 세계적인 육상스타로 발돋움하는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남자 400m 허들에서 깜짝 질주로 정상에 오른 챔피언 데이비드 그린(25·영국)은 같은 웨일스 출신인 축구영웅 라이언 긱스를 동경하던 축구 유망주였다. 왼발잡이인 그린은 13세 때 스완지시티 유스 팀에 입단해 팀의 왼쪽 날개로 승승장구하던 기대주였지만, 16세에 찾아온 무릎 부상으로 축구를 포기해야만 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한 그린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비로소 금메달을 목에 건 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며 “나는 이제 세계 최고다. 경기 초반에는 불안했지만 우승을 했으니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챔피언의 기분을 만끽했다.

레이스 막판 극적인 역전으로 여자 1500m에서 우승을 거둔 제니퍼 심슨(25·미국) 역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3000m 장애물에 출전했던 선수다. 여자 3000m 장애물 종목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심슨은 장애물 종목에서 미국 대표팀에 선발되기가 어렵다는 코치의 권유로 경쟁이 덜한 1500m로 종목을 전환했다.

심슨은 “선발전 경쟁을 피하려고 종목을 바꿨다가 생각하지도 않은 금메달을 땄다”며 “1위로 결승선에 들어오던 순간, 모세 앞에서 홍해가 쫙 갈라진 것처럼 내 앞에 트랙이 활짝 열렸다”고 놀라워했다.

높이뛰기 선수로 한때 중남미를 주름잡던 여자 세단뛰기 동메달리스트 캐터린 이바구엔(27·콜롬비아)도 최근 주 종목을 높이뛰기에서 세단뛰기로 바꿔 세계선수권대회 첫 메달을 목에 걸었고, 지난달 31일 남자 3000m 장애물 달리기에서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를 달성한 에제키엘 켐보이(29·케냐)도 학창시절에 잘나가던 축구 미드필더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