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공권력 투입… 새벽 도로 차단 3시간만에 펜스 설치

입력 2011-09-02 18:24

2일 오전 5시.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여명을 뚫고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긴급상황입니다. 경찰 병력이 지금 마을로 투입됐습니다. 모두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마을 주민들은 새벽잠에서 깨어나 중덕삼거리로 향했지만 이미 출입구는 경찰에 의해 봉쇄된 뒤였다. 경찰은 이날 새벽 4시부터 병력을 움직여 사업 부지와 연결된 마을 내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중덕삼거리로 진입하는 통로는 모두 막혔다. 언론의 출입마저 철저히 통제됐다. 하지만 지역 지리에 익숙한 주민들은 밭고랑과 비닐하우스 사이로 몸을 숨기며 하나둘 모여들었다.

중덕삼거리에는 밤샘 농성을 벌이던 주민과 활동가 등 100여명이 “강정마을 지켜내자”는 구호를 외치며 결사항쟁 의지를 다짐했다.

오전 6시. 팽팽한 대치 속에서 경찰 병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기경찰청 소속 기동대와 여경 부대 등 1000여명의 경찰 병력은 농성장을 포위했다. 해군은 이 틈을 이용해 굴삭기를 동원, 펜스(가설방음 차단벽) 설치를 강행했다. 경찰과 주민들 간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일부 주민은 서로 팔짱을 끼고 연좌 농성에 들어갔다.

39일째 쇠사슬 농성 중이던 현애자 민주노동당 제주도당 위원장을 비롯한 여성들은 서로의 몸을 있는 힘껏 밀착하며 쇠사슬로 몸을 더 강하게 결박했다. 이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보는 이를 아찔하게 만드는 ‘고공투쟁’도 연출됐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은 5m 높이의 탑에 올라가 결사항쟁 의지를 밝혔다. 중덕삼거리에 설치된 2m 높이의 가건물에서는 올라가려는 주민들과 이를 밀쳐내려는 경찰들로 연신 위험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저항에도 강정마을은 서서히 공권력 앞에 무력화되고 있었다.

해군은 현장에 굴삭기 2대를 동원, 펜스를 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이에 반발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저항하는 주민과 활동가들을 차례로 연행했다. 고유기 제주군사기지저지 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과 주민 등 3명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마을회관에서 체포됐다.

오전 7시. 경찰은 중덕삼거리를 완전히 장악, 본격적인 펜스 설치 공사에 들어갔다. 해군은 굴삭기를 동원해 마을과 해군기지 사업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농로를 차단하는 펜스를 설치했다. 펜스 앞에는 철조망을 쳤다.

숨막히던 긴장감 속 오전 2시간 내내 공권력에 의해 무력화된 강정마을은 울부짖으며 슬픔만 토해냈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