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승주]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 듣다
입력 2011-09-02 17:47
MBC TV ‘나는 가수다’(나가수)는 실력은 있으나 방송에선 심야시간대로 밀려났던 가수들을 황금시간대로 불러냈다.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수들이 나가수 출연 후 스타로 떠오르며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1970∼80년대 명곡을 우리 시대로 불러들여 새로운 명곡으로 거듭나게 한 것도 나가수의 공이다. 하지만 가장 큰 공은 사람들이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듣게 만들었다는 것 아닐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래 가사가 중요했다. 한 편의 시처럼, 때로는 영화처럼 상황이 그려지는 가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사 때문에 가슴이 저렸고,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노래에서 가사가 사라졌다. 가사는 있으되 노랫말을 새기지 않는 풍조가 된 것이다. 시적인 비유나 은유·함축이 줄고 대신 그 자리를 독설과 센소리, 직접화법, 반복되는 후렴구가 채웠다. 노래보다는 춤이 대세였고, 실력보다는 비주얼이 중요한 듯 보였다. 립싱크, 비주얼 가수 등장이 가요계의 고질병으로 대두되기도 했다.
예전엔 지금보다 싱어송라이터가 많았다. 그들은 멜로디를 직접 만들고 가사도 썼다. 며칠 밤을 끙끙대고 만든 곡을 친한 가수에게 주는 경우도 많았다. 특별한 대가 없이 나중에 밥이나 한번 사라는 게 전부였다. LP나 CD를 생일 선물로 주는 경우도 흔했다. 노래 선물은 마음의 표현이자 고백이기도 했다. 김광석 유재하 김현식 등의 노래에선 감수성과 서정성이 듬뿍 묻어났다.
한동안 사라졌던, 그래서 아쉬웠던 이런 풍토가 요즘 살아나고 있다. 박정현의 ‘나가거든’은 한 편의 뮤지컬처럼 눈앞에 그림이 그려졌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선 힘들었던 지난날이 스쳐 지나갔다. 인순이가 부른 ‘아버지’를 들을 땐 코끝이 찡해졌고, 임재범의 ‘여러분’에는 한없는 위로를 느꼈다.
최근 1위를 한 장혜진이 부른 ‘가질 수 없는 너’는 노랫말이 절절하다. 김조한이 ‘천생연분’을 부를 때 인순이는 “난 옛날 노래가 좋아”라고 외쳤다. 그 이유가 단지 자신의 추억이 담겨 있는 익숙한 노래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수의 숨소리마저 귀 기울이며, 가사 하나하나를 새겨보는 대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듣는 시대. 이런 분위기가 반갑다.
한승주 차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