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경남 고성순복음교회 김이일 목사] “기적이라고요? 장애인 섬김에 대한 은혜죠”

입력 2011-09-02 18:03


죽을 것 같은 사람이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지체부자유자가 일어나며, 뇌졸중(중풍병) 환자가 걷는 것을 사람들은 보통 ‘기적’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남 고성순복음교회 김이일(69) 목사 주변에는 이 같은 경험을 한 이가 적지 않다.

조계남(45·여) 집사의 고백이 대표적이다. 27년 전, 조 집사가 고3 때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거제도에서 사역하던 김 목사는 지인을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조 집사의 집으로 달려갔다. 작은 체구의 김 목사는 훨씬 큰 덩치의 환자를 업고 사상 터미널까지 1시간을 걸었다. 시외버스를 태워 다시 거제도의 교회로 데려갔다. 재가(在家)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김 목사는 거제시 사득면 광리순복음교회에서 뇌졸중 환자 3명과 함께 목회를 하고 있었다. 김 목사는 밤낮으로 찬송과 기도를 하며 환자들의 치유를 도왔다. 이순애(64) 사모는 거동을 못하는 환자들의 속옷을 빨고, 몸을 씻겼다. 치료 시작 3개월 후 조 집사의 아버지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옴짝달싹도 못하던 다리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걷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엔 가벼운 운동도 했다. ‘예수’의 ‘예’자도 꺼낼 수 없게 핍박하던 이가 성경을 읽고 스스로 교회에 나왔다.

이런 조 집사의 아버지를 보고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조 집사는 “남들은 기적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가족보다 더 헌신적으로 아버지를 도왔던 목사님의 섬김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목사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주시는 진짜 목사님”이라고 강조했다. 조 집사는 이런 김 목사를 언제부턴가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김 목사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다. 강원도 화천 산골에서 11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하지만 보증 섰던 게 잘못돼 결국 교직을 떠났다. 구두닦이, 막노동 등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그는 경기도 파주의 오산리금식기도원 앞에 집을 구했다. 기도만이 살 길이라고 봤다. 거기서 소명을 발견하고 신학을 하고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전도사가 돼 그가 부임한 곳은 오산리금식기도원. 집회 때마다 찬송 인도하는 게 그의 주사역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한 뇌졸중 환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일으켜 달라’는 것이다. 그는 환자 앞에서 찬송과 안수기도를 반복했다. 한참 후 손을 잡아 일으키자 잠시 다리를 후들거리던 환자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기도해 달라며 모여들었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역이 불가능했다. 최자실 목사가 그를 불렀다. “한적한 곳에 가서 성경공부를 해라. 목사가 되려면 능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해.” 그는 최 목사의 말대로 경남 거제의 광리순복음교회로 내려왔다. 이름도 ‘김반석’으로 바꿨다. 추종하는 사람들을 떼어내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그의 소문을 듣고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찾아왔다. 지금은 멀쩡해져서 목회를 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을 하거나 자격증을 따서 사회로 진출한 이들도 여럿이다. 이후 김 목사는 지금의 고성순복음교회에서 다시 개척을 했고, 올해로 20년째를 맞는다. 이런 김 목사에 대해 기하성 여의도순복음총회 경남지방회 추정수 총무는 “김 목사님은 요한계시록 말씀처럼 정말 장애인들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고성순복음교회가 있는 고성군 우산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시골길농촌 마을길을 가로질러 산쪽으로 난 길 끝자락이다. 한때 유명 목회자가 되어 잘 나갈 기회도 있었다. 초야에 묻혀 지내는 게 원망스럽지는 않느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었다. “하나님은 의지할 데 없는 장애인들의 버팀목이 되라고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만큼 더 기쁜 일이 어딨겠습니까.”

고성=글·사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