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신나는 퍼포먼스 우리 함께 즐겨보자구요
입력 2011-09-02 23:30
긴 생머리에 얼굴은 V라인, 피부는 우윳빛. 딱 공주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 것 같은 ‘살림전문블로거’라며 그녀가 특급살림법을 담은 책까지 냈다. 얼마 전 ‘파워블로거의 불미스런 공구사건’도 있고 해서 현장점검(?)에 나섰다.
“살림 직접 하시는 거 맞아요?” 이렇게 묻자 여희정(40·서울 삼성동)씨는 “그런 질문 많이 받는다”며 슬며시 손을 내밀어 보였다. 굵은 마디에 짧게 자른 손톱, 만져보니 군데군데 군살도 박혀 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못생긴 발을 떠올리게 하는 그 손을 들어 보이며 “살림 하다보니 이렇게 변했다”며 활짝 웃는다.
집은 살림전문 블로거의 둥지답게 깨끗하고 예뻤다. 블로그 아이디 ‘핑크엔느’에 걸맞게 핑크빛으로 장식된 거실은 살림집이라기보다는 스튜디오 같았다.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는 그는 손품 발품을 팔아 돈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다고 은근 자랑했다. 책에 나온 곳곳이 바로 그녀의 집이고, 사진도 직접 찍었단다. 여씨는 ‘그래서 책에는 못생긴 손만 나왔다’며 또 호호 웃는다.
“살림을 신나는 퍼포먼스로 생각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조곤조곤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녀의 책 ‘참 쉬운 살림’에는 수납 청소 수선 등 살림 기술에 관한 노하우가 350여 쪽에 걸쳐 빼꼭히 실려 있다. 14년차 주부로서 현장에서 얻은 정보들이 반짝반짝 빛나지만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살림관이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밥하고…. 해도 해도 끝도 없고, 표도 나지 않고, 그렇지만 안 하면 금세 티가 나는 살림. 그래서 주부들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살림살이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런데 여씨는 살림을 ‘창조적 예술’로 정의했다.
“저는 제 자신을 홈 CEO라고 생각해요. 내 살림을 디자인해나가면서 운용의 묘미를 즐깁니다. 가사를 힘들고 끝없는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더 힘들게 마련이죠.”
아이를 둘 낳았지만 여느 중년여성들이 훈장처럼 달고 있는 군살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녀는 날씬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타고난 ‘저질 체력’ 때문에 쓰러져 어린 남매를 기함하게 만든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하지만 살림살이를 남에게 맡긴 적은 없다고 했다. 가녀린 몸매의 그녀를 버티게 하는 것은 효율적인 살림법과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꿈이다.
“살림은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시스템이어서 노하우만 안다면 빠른 시간 내에 집중해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제일 힘이 드는 일 중 하나인 청소도 매일 할 것부터 일주일·격주·월별·계절별로 할 것 등 청소도표를 마련하고, 매일의 청소에는 동선을 정해 효율적으로 해낸다고 한다. 수납도 마찬가지다. 계획표를 만들고, 큰 공간에서 작은 공간으로 옮겨가면서 하고, 같은 공간에서도 거실장 콘솔 협탁 순으로 큰 규모에서 작은 규모 순서로 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 힘을 낸다”는 말은 이해가 가는데 꿈을 위해 살림을 열심히 한다? 무슨 얘기냐고 하자 이번에는 ‘하하’ 크게 웃는다.
“20년쯤 후 살림을 어려워하는 주부들을 위해 살림학교를 내고 싶어요. 지금 열심히 콘텐츠를 마련하고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셈이죠.”
2005년부터 사이월드에 인테리어 수납 관련 사진과 글을 올렸고, 블로그는 2007년 시작했다는 그녀는 최근 파워블로거의 사건에 대해 “한두 사람 때문에 다른 블로거들이 덤터기를 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파워블로거가 ‘공동구매’로 판매한 상품의 부작용이 문제가 되면서 판매 수수료를 엄청나게 챙긴 것이 드러나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른, 이른바 베비로즈 사건이다.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대학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돈과 명예는 한꺼번에 누릴 수 없다. 두 마리 토끼를 좇다가는 둘 다 놓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녀는 그래서 블로그를 하다보면 다양한 유혹이 있지만 눈길도 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LG화학의 지엔느, LG패션의 헤지스, 리바트열정체험단, 힐스테이트 힐스 스타일러, 한화프렌즈 등 프로슈머로 활동했던 그녀는 자체 평가에서 매번 1등상을 거머쥐었다. 그런 그녀에 대해 동료들은 “주최측과 미리 짜고 한다”고 수근거렸다. 그녀는 노력은 보지 않고 결과만 갖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싫어 프로슈머활동을 접었다.
미래의 살림학교 교장을 꿈꾸는 여씨는 “살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통해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