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낸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 인터뷰 “환자 생각 않는 시위 서글펐을 뿐”
입력 2011-09-01 22:04
“사직서를 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국 의료기관에 확성기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적자가 나서 수백억원의 혈세가 들어오는 공공의료기관이 바로 세워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1일 오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국립중앙의료원 박재갑 원장은 강한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겸직한 박 원장은 최근 의료원 노동조합이 병실 앞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파업 전야제를 벌인 것에 반발, 31일 보건복지부에 사직서를 냈다. 지난해 4월 특수법인으로 전환된 중앙의료원 초대 원장에 부임한 지 1년5개월 만이다.
박 원장은 월·수·금요일은 중앙의료원에서 근무하고 화·목요일은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한다. 그는 “사직서를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동료 의사와 지인들이 격려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아무리 노동 권익도 중요하지만 환자 옆에서 확성기를 틀어놓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한나라당 강성천 의원은 박 원장에게 직접 전화해 노동계 출신 의원으로서 안타까움을 전했다고 한다. 강 의원은 의료기관 내, 특히 병실 앞에서 확성기 사용이나 꽹과리 등 소음공해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겠다는 뜻도 비쳤다고 했다.
박 원장은 의료원 내부 문제에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가 관여한 데 격분했다. 민주노총과 산하 보건의료노조 서울지부 지도부 20여명은 의료원 노조원 100여명과 함께 지난 29일 중앙의료원 내 입원실 앞에서 의료원 축소·이전 반대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중앙의료원을 현재의 서울 을지로6가에서 원지동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박 원장은 “내부 직원들은 확성기를 틀지 못한다. 그럴 배포도 없다. 그런데 확성기 소리가 들리자 ‘상급단체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곳을 떠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다음날 짐을 챙겨 나왔다.
박 원장은 의료원 부지 이전은 정부 차원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의 압력설, 보건복지부와의 갈등설은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부지 이전은 내게 권한이 주어지면 대통령이나 총리에게도 말할 수 있다. 내가 반발해 물러날 사안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아직 박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박 원장은 사직이 반려될 경우에 대해 “그렇다 해도 다시 돌아가기엔 늦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전 직원이 강당에 모여 결의대회를 통해 다 털고 다시 함께하자고 요청하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사흘이 지났는데도 노조 집행부로부터 어떤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사실상 복귀 뜻이 없음을 밝혔다.
한편 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 임직원 97명과 레지던트·간호사·행정직원 등 700여명은 박 원장의 사직서 반려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복지부에 제출했다. 이들 중에는 일부 노조 조합원도 포함됐다. 임직원들은 “박 원장이 사퇴할 시점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