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으로 얼룩진 데칼코마니… 최인석 장편 ‘연애, 하는 날’

입력 2011-09-01 17:39


소설가 최인석(58)의 장편 ‘연애, 하는 날’(중앙북스)은 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한다. 왜 ‘연애하는 날’이라고 하지 않고 ‘연애, 하는 날’이라고 연애 다음에 쉼표를 찍었을까. 그의 말을 들어본다.

“그냥 ‘연애’라고 할까 하다가 그건 성에 안 차고 뭔가 부족한 거 같고, 그래서 앞에 ‘연애’를 놓고 뒤에는 앞의 ‘연애’를 야유하는 기분으로 ‘하는 날’이라고 붙였지요. 이 정도로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또 하나의 궁금증은 이어진다. 소설 속 소제목을 훑어보면 ‘이월의 방’ ‘집과 집’ ‘집들의 표정’ ‘펜트하우스’ 등 ‘집’과 관련된 공간들이 많이 등장한다. 소설 제목을 ‘집’이라고 붙였으면 싶을 정도다. 왜 ‘집’들이 강조되고 있는 걸까. 역시 작가에게 들어본다.

“집은 물리적 공간이지만 그것은 건물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가 ‘가정’이라고 할 때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죠. 이 소설에서 집이란 그런 인간관계와 물리적 공간을 동시에 뜻한다고 해야겠죠.”

집보다는 오피스텔에서 연애가 잘 되듯, 공간의 성격에 따라 연애의 성격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작가는 공간을 각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장우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기름장수 아주머니 딸의 뒤늦은 결혼식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본 수진은,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울보 수진이, 아니 환한 웃음을 지닌 눈부신 여자,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 수진은 장우의 회사에 취직하고 그의 부름에 따라 호텔로 찾아간다. 그가 키스하는 순간, 수진은 저항할 수 없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 느껴보는 사랑이다. 장우는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 오피스텔을 마련하고 몇백만원씩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지만 수진이 그를 만나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장우와의 관계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사랑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장우는 다르다. 장우는 수진을 훔쳐서 소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수진이 그에게 아파트를 사달라고 한 것은 장우에게는 매뉴얼에 없는 페이지다. 매뉴얼의 마지막 장에 도달한 그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장우는 깨달았다. 그가 수진에게 아파트를 사준 순간 매뉴얼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더 이상 매뉴얼은 없었다. 그가 당황한 것은 바로 매뉴얼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중략) 그는 더 가보고 싶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왜? 알 수 없었다. 더 갈 것이냐 끝낼 것이냐. 저울질 끝에 그 순간 장우가 선택한 것이 더 가는 길이었다.”(130쪽)

두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욕망했기에 결국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설은 어딘가 익숙하다. 지금 현실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삶, 현실 속의 무수한 장우와 수진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기 때문이다. 소설 속 연애는 당연히 무참한 종말을 맞는다.

하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뜨거우면서도 냉정한 연애의 두 얼굴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을 견뎌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장면들이다. 지금 당장 사랑 때문에 혹은 연애 때문에 아프다면 이 소설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