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표준어
입력 2011-09-01 18:00
‘재작년’ ‘매년’ ‘염료’ ‘용도’ ‘호랑이’ ‘신랑’.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늘 쓰는 이 말들이 1936년만 해도 표준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해 10월 조선어학회가 발간한 ‘사정(査定)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 따르면 당시 표준어는 각각 ‘그러께’ ‘해마다’ ‘물감’ ‘씀씀이’ ‘범’ ‘새서방’이었다.
일상어임에도 표준어에서 배제시킨 이 예에서 보듯 표준어는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 인위적이다. 그럴 것이 표준어는 방언(方言)의 차이에서 오는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해 전 국민이 사용하도록 강제로 한 나라의 공통어로 공식화시킨 방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표준어는 각 방언과는 별도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말이 아니라 많은 방언 중 하나, 또는 거기에 일정한 규제를 가한 변형된 방언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표준어와 관련해 착각하기 쉬운 부분은 또 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이라는 정의 때문에 표준어는 점잖고 고상하고 고운 말로 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발모가지’ ‘볼때기’ 같은 일부 비속어도 적절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라는 의미에서 표준어에 포함된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런 표준어의 기능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통일의 기능. 표준어 제정의 일차적 목표는 물론 언어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을 넘어 한 나라 국민으로서 일체감을 높여 한 덩어리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월의 기능이다. 표준어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것, 스스로 식자층·상류층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주는 표지의 기능을 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준거의 기능이다. 표준어는 국민이라면 지키고 따라야 할 언어생활의 규범이므로 표준어를 통해 준법정신을 함양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보면 표준어를 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문제는 표준어가 인위적이어서 ‘생물’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변화무쌍한 자연발생적인 현실 언어와 괴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장면과 짜장면이었거니와 이번에 국립국어원이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한 것은 표준어 정책이 자연표준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바람직하다.
이 명예교수의 지적처럼 표준어를 배우면서 억지라는 느낌을 받고 그로 인해 국어에 대한 애착심이 손상된다면 표준어를 안 배우느니만 못하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