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주민들은 제게 특별한 분들이죠"...오동찬 국립소록도 병원 의료부장
입력 2011-09-01 20:46
[미션라이프] 소록도 주민에게 그는 ‘재롱둥이’다. 그의 휴대전화에서 70년대 히트곡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를 개사한 익살스런 노래가 흘러나온다. “철수네 아버지는 똥 퍼요”였다. 주민들이 아주 재미있어 한단다. 좀 썰렁해진 기자에게 소록도만의 웃음코드 하나를 더 들려줬다. “63빌딩에서 가족이 떨어졌는데 모두 살았대요. 왜 그런지 아세요? 아빠는 기러기아빠였고 엄마는 새엄마였대요.” 그럼 자녀들은? “아들은 비행청소년, 딸은 날라리래요.”
오동찬(43)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 그는 이렇게 산다. 1995년 조선대 치대를 졸업하고 서울 강남성심병원에서 1년 수련의 과정을 마친 뒤 소록도 공중보건의로 왔다. 소록도에서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31일 병원에서 만난 그는 주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민들과 함께 웃었고 전동 휠체어를 탄 주민들에게 “좀 걸어다니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만 16년을 머물고 있는 이유가 뭘까. “1대 580로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저는 여기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제가 떠나지 못하도록 기도하네요. 백전백패지요.”
오 부장은 진료와 수술은 물론 주민들의 집 청소와 각종 허드렛일 등을 도맡아 했다. 지금은 내과 외과, 피부과 전문의가 있지만 5년 전까지만 해도 공보의들의 잦은 교체로 공백기가 있었다. 산부인과만 빼고 웬만한 치료는 다했고 급하면 뭍으로 나갔다. 그때마다 주민 치료비를 대신 지불하기 일쑤였고 월급 전부를 틀니 제작비로 썼다. 주민들은 그런 그를 신뢰했다.
“주민들은 제게 특별한 분들입니다. 결혼한다고 500원, 1000원을 모아 주셨어요. 꼬막손으로 제가 좋아하는 팥죽 만들려고 맷돌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할머니 집에 밥 먹으러 간다고 해놓고 못 갔는데 그 분은 밤새 기다린 거예요. 다음날 울며 사죄했지요.”
한센병 환자들은 손이 불편하다. 감염으로 손가락이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치질이 힘들다. 이 때문에 구강 환자가 많다. 입안에서 고름이 흐르는 것은 예사이고 암 발병도 높아 심하면 입에서 구더기도 나온다. 오 부장은 이걸 모두 받아냈다.
“한센병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요. 아직도 전염이 되는 줄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 보세요. 환자들 수술하며 피를 많이 맞았는데도 멀쩡하잖아요? 결핵보다 100배는 안전합니다. 지금 소록도병원에는 병 때문이 아니라 고령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 환자 등이지요.”
편견은 기독교인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레위기 13장에 등장하는 나병 규례는 실제 한센병과는 증상이 다릅니다. 히브리어로는 ‘치라아트’, 즉 피부병입니다. 나병은 고원 다습한 지역에 많은데 성경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고온 건조에요. 한글성경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생긴 오해 같습니다.”
그의 바람은 소록도 주민들이 일반 사회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주민들은 몸이 좀 불편한 장애인일 뿐이에요. 왜 그들이 사회와 격리돼야 하나요.”
그의 집무실 책상엔 닳고 닳은 가죽 성경책이 놓여있었다. 소록도에 와서 매년 1독씩 한 흔적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저는 능력이 없지만 아픈 주민들이 수술을 받아 나으면 그렇게 좋아요.”
그의 휴대폰이 울린다. ‘똥퍼요’ 노래다. 수요예배 시간이란다. 그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소록도=글·사진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