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경제雜說] 그건 너무 간단하잖아?

입력 2011-09-01 17:54


미국 경제의 역사에서, 아니 산업혁명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라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꼽는다. 당시 민주당의 루스벨트가 집권당 유력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경제위기를 극복해 달라는 국민들의 여망 덕분이었다. 그렇게 백악관에 입성한 루스벨트가 보좌관에게 대공황을 극복할 묘책을 물었다. 그런데 보좌관의 대답이 “재정지출을 늘려 공공사업을 확대하고 고용을 증가시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루스벨트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그건 너무 간단하잖아?”

우리가 흔히 성인군자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거론하는 공자(孔子)도 세상의 이치는 매우 쉽고 우리 곁에 있다고 늘 말씀했다. 논어(論語)를 읽다 보면 공자가 이야기한 도덕이 너무 단순하고 쉬운 것들이어서 이것이 정말 성현의 말씀이 맞는가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가령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자로(子路)는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그가 스승에게 정치의 가장 중요한 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의 대답은 “항상 백성의 선두에 서고 백성에 대한 위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로가 선뜻 마음에 차지 않아 반문하였다. “그렇게 간단한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사는 이치가 대단히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그런 단순한 진리가 어떻게 세상살이의 이치일까 하고 지레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세상의 도리는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먼 곳에 있고, 낮은 곳이 아니라 저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얼마 전 서울시 초등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 확대의 시기와 방법을 놓고 오세훈 시장이 발의한 주민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무효가 되었다. 투표 결과를 떠나서 과연 어떤 정책이 더 좋은 정책일까를 생각해 보자. 경제학에서는 어떤 선택의 결과를 평가할 때 흔히 효율성과 공평성을 기준으로 따져 본다. 효율성과 공평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당연히 최선의 안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효율성과 공평성을 ‘두 마리 토끼’에 비유하곤 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공평성을 잃기 쉽고, 반대로 공평성을 추구하다 보면 효율성을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전면적이든 제한적이든, 보편적이든 선별적이든, 무상이든 유상이든, 급식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다.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쌀을 주는 것과 돈을 주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가 하고 물으면 경제학은 돈을 주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돈을 주면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밥을 사 먹고, 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빵을 사 먹고,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라면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쌀을 주면 좋든 싫든 밥을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효율적이라는 말은 복지를 받는 저소득층의 효용이 더 크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어린이들에게 급식을 하지 말고 소득에 따라 차별적으로 식비를 주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준 돈으로 다들 밥을 먹지 않고 술만 사 마신다면 과연 그것도 효율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마찬가지로 만약 어린이들에게 밥 대신 돈을 주었을 때 그 아이들이 밥은 사 먹지 않고 오락실이나 만화가게에서 그 돈을 다 써 버린다면, 그래도 그것이 더 효율적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령 돈을 식비 용도로 제한한다 치더라도, 도대체 전국의 수백만 어린이들이 과연 어디서 어떻게 밥을 사 먹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돈을 주라는 주장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공평성에 대한 주장도 살펴보자. 과연 모든 어린이들에게 똑같이 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공평한가, 부모의 소득에 따라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공평한가? 경제학자들은 통상 “각자의 지불 능력에 따라 다르게 지불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경우 급식의 대가를 어린이들이 지불하는가? 의무교육을 포함하여 정부가 하는 일들의 비용은 당연히 세금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급식비를 받는 대신에 그 부모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면 된다. 이 얼마나 공평하면서 어린이들의 자존감을 지켜줄 수 있는 쉬운 방법인가?

공자님 말씀처럼 세상의 이치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거늘, 사람들이 공연히 세상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And는 조준현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의 칼럼 ‘경제 잡설(雜說)’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경제잡설은 여러 사회현상 속에 담긴 의미와 배경을 경제적 관점에서 풀어내려고 합니다. 조 소장은 부산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인민대 초청교수를 거쳐 현재 부산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 ‘19금 경제학’(간행물윤리위원회 이달의 책 선정), ‘사람의 역사, 경제의 역사’(학술원 우수도서 선정), ‘학교에서 경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선정), ‘서프라이즈 경제학’ ‘자본주의: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승자의 음모’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