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의 野口] 꼴찌팀의 스포츠 정신

입력 2011-09-01 17:46


올해 프로야구 꼴찌는 줄곧 넥센 히어로즈가 도맡고 있다. 초반에 분투하다 오월부터 떨어지더니 아주 쭉 자리보전 중이다. 그런데 막판에 이게 웬 떡인가. 최근에 폭발적인 승률을 올리며 이 꼴찌팀이 선전하고 있다. 이제 와 순위에 큰 변동이 있지는 않겠지만 선수들이 마지막 오기를 부리며 명승부를 펼쳐대고 상위권 강팀들을 농락하고 있는 건 그동안 맘고생하며 응원한 팬들에게는 행복한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이적생 박병호 선수가 4번 타자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고 있어서기도 하지만 이 반가운 현상의 중심에 허도환 선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허도환 선수는 신고 선수로 입단해 1군 무대에 올라온 힘든 역정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사연뿐만이 아니었다. 허도환 선수에게 꽂힌 건 파이팅이 장난 아니라는 게 곁눈질로만 봐도 딱 드러나서였다. 그의 플레이에선 늦여름보다 뜨거운 최선이 후끈거린다고나 할까. 포수를 보는 그는 어찌나 자주 타구에 맞는지 신기해 보일 정도인데 거의 급소 부위에 공을 맞고 데굴데굴 뒹굴어도 어렵게 올라온 무대를 떠날 수는 없다고 항변하는 듯 이내 통증을 참고 벌떡 일어나는 근성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꽤 인상적이었지만 오오, 깜짝, 이럴 수가! 털고 일어나면서 쓰윽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그는 불운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미소로 고통을 참으며 다시 마스크를 쓰고 앉는다. 그래서인지 그가 홈플레이트에 앉아 있으면 안정감과 동시에 오기와 근성과 투지의 아우라가 펼쳐지는 듯했다. 안방에서 그런 매력적인 스포츠 정신이 퍼져 나오니 투수들이 안정되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며 박병호 선수를 중심으로 타자들도 펄펄 힘을 내는 거다.

얼마 전엔 홈으로 쇄도하는 LG의 이병규 선수와 홈플레이트에서 얼굴이 돌아갈 만큼 심하게 충돌했는데 그는 끝까지 공을 놓치지 않고 블로킹해냈다. 꼴찌팀 무명 포수와, 포스트 시즌 티켓을 위해 갈 길 바쁜 팀 고참 플레이어 간의 충돌이었다. 성난 팬들이 선수단 출입구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등 똥줄 타는 엘지 선수들의 절박함이 더 컸을 테다. 그러나 허도환 선수의 스포츠 정신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타자의 절박한 홈 쇄도보다 더욱 절실한 것이었는지 그는 끝내 주자를 막아냈다. 한참 그라운드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지만 늘 그랬듯이 그는 다시 일어나 아픈 목을 부여잡고 미소를 날렸다. 당연히 넥센은 그날 이겼다. 꼴찌 넥센이 막판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를 보여주는 건 방출과 부상으로 끝날 뻔했던 야구를 끝내 포기하지 않은 허도환 선수가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다른 팀 주전 포수들과 절대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최하위 팀을 응원하면서 한 선수의 플레이로 인해 갑자기 이토록 즐거워질 줄은 몰랐다.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가 OECD 30개국 가운데 꼴찌라는 통계를 봤다. 사실 체감 물가가 비싸서 살 수가 없다. 이사 가야 하는데 임대료가 너무 올라 걱정뿐이고 막막해 죽겠다. 하지만 정부가 근성 있게 물가를 블로킹하고 전세난을 안정시키는 오기를 보여주며 파이팅해 준다면 힘겨운 국민들도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