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머리 아픈 물리학, 재미나게 풀어낸 물리학자

입력 2011-09-01 18:13


파인만/글 짐 오타비아니/그림 릴건드 마이릭/ 서해문집

영국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생애를 다룬 그래픽노블(만화의 한 형태) ‘로지코믹스’는 책 좀 읽는다는 애서가 사이에서 꽤나 회자됐던 책이다. 지난 2월 나와 1만5000부나 팔렸다. 수(數)의 절대성에서 답을 추구하던 논리학자이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실천적 교육개혁가, 반전 운동가였던 러셀의 생애와 사상을 만화 한 권에 녹여낸 솜씨에 새삼스레 ‘러셀 자서전’을 펴봤다는 이들도 많았다.

‘로지코믹스’보다 유기적 구성은 떨어져 보이지만 그래픽노블 ‘파인만’ 역시 천재의 삶과 사상을 한꺼번에, 그것도 재미있게 읽을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로 꼽히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1918∼1988) 전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의 평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미시 물리학 분야의 대표 학자이자 봉고 연주자,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던 파인만은 청중을 설득하는 달변으로 과학자답지 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쇼맨십도 대단해서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 조사위원회에 참가했을 때는 TV카메라 앞에서 얼음물에 링을 넣는 실험을 시연해보이기도 했다. 유례없이 추운 날 발사된 챌린저호 폭발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잘 생기고 공부 잘하고 놀기도 잘했던 파인만에게는 여자도 많았다. 한때는 일주일에 6일씩 토플리스 클럽에 출근해 물리학을 연구했다. 경찰이 클럽 댄서들을 체포했을 때는 ‘토플리스 춤이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만하다’는 법정 증언을 했다. 언론은 ‘토플리스 춤을 보러 다니는 물리학자’를 대서특필했다. 암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는 죽기 직전 한 차례 깨어나 마지막 말을 남겼다. “두 번이나 죽기는 싫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야.”

오해하지 말 일은, ‘파인만’은 어른용 학습만화가 아니다. 출판사는 “양자 전자기학에 대해서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을 쉬운 소개를 곁들이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그 일반인에 포함되지 않을 사람이 여럿 될 것 같다. 파인만 이론에 관심은 있는데, 과학이라면 특별히 자신 없는 독자라면 이 책보다는 파인만 저서를 읽는 게 지름길일 것 같다.

파인만이 뉴질랜드 강의에서 했다는 말이 위안이 되긴 한다.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이걸 공부하는 사람들도 이해 못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가르치는 교수들도 이해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해를 못 합니다.”

이상국 옮김.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