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네… 우리가 몰랐던 인간 관계의 ‘딜레마’

입력 2011-09-01 18:12


관계의 본심/클리포드 나스·코리나 옌/푸른숲

세상이 다 아는 제 잘못은 남에게 떠넘기고, 뻔히 보이는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는 사람. 주변에 꼭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경쟁에서 절대 밀려나지 않는다. 질책당하는 일도 드물고 심지어 유능해 보인다. 겸손하고 실수를 금방 인정하고 남의 잘못도 제 것인 양 떠안는 사람. “그 친구 참 선해.” 칭찬은 자자한데 조직에서는 밀리고 치인다. 분노할 거 없다. 그를 무시하는 건 칭찬하는 동료, 바로 우리들이다. “내 탓이오.” 선뜻 인정하는 착한 동료를 우리는 멸시한다.

딱히 우리가 못돼서가 아니다. 그게 평범한 뇌가 작동하는 감정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클리포드 나스 미국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와 저술가 코리나 옌이 공저한 ‘관계의 본심’은 ‘인간 감정은 복잡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인간 두뇌는 정교하고, 뇌가 빚어내는 감정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감정이 다양하다고 법칙이 없는 건 아니다. 저자는 컴퓨터를 이용해 인간이 칭찬, 비판, 겸손, 공감, 호의 등의 27가지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했다. 그렇게 도출된 심리 법칙은 언뜻 당연하고 평범해서 오래 생각해볼 만하다.

똑똑해 보이려면 비판하라

비판하는 사람은 칭찬하는 사람보다 분명히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남한테 나쁜 말 하는 사람이 못돼 보인다는 얘기다. 반전은 못돼 보이는 사람이 똑똑해 보인다는 데 있다. 늘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지적인 인상을 남겼다.

‘교사 컴퓨터’와 ‘평가 컴퓨터’를 활용한 실험이 이를 확인했다. 두 집단의 참가자가 교사로 지칭된 컴퓨터로 공부를 한 뒤 C, D 컴퓨터로부터 교사 컴퓨터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C는 교사 컴퓨터의 성능을 칭찬했고, D는 비판했다. 이들에게 평가 컴퓨터 C, D에 대한 호감도와 성능을 물었다. 참가자들은 좋은 말만 한 칭찬 컴퓨터 C에 훨씬 높은 호감을 보였다. 반면 시스템 성능에 대한 점수는 비판 컴퓨터 D가 높았다. 물론 C, D의 성능 차이는 없었다.

사람들은 겸손한 태도를 좋아하지만(높은 호감) 제 잘못을 동료에게 미루는 사람을 더 잘났다고(유능) 평가한다. “겸손은 칭찬할 만한 성품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능력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면 조직에서는 무조건 잘난 척하고 비판해야 살아남는 걸까. 길은 있다. 동료와 서로 칭찬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하면 칭찬은 호감도를 낮추지만, 남이 해주는 칭찬은 능력 있어 보이면서 호감도를 깎아 먹지 않는다. 남이 나를 칭찬하게 하려면? 내가 먼저 하면 된다.

비판한 뒤 칭찬하라

저런 말 하고 싶을까. 절로 미워지는 아첨의 달인들이 있다. 하지만 아부꾼보다 더 미운 건 그런 말을 듣고 내심 좋아하는 상사들이다. 가당치 않은 칭찬에 보스는 왜 입이 벌어질까. 그들의 뇌 역시 평범하기 때문이다.

A, B 두 집단이 두 종류의 컴퓨터를 가지고 스무고개를 했다. A집단이 질문을 입력하면 컴퓨터는 감탄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입니다.” B집단이 받은 반응은 정반대였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참가자는 컴퓨터의 평가가 무작위라는 것, 즉 가짜 평가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칭찬 받은 A는 스무고개가 흥미로웠다고 한 반면, B는 지루했다고 답했다.

흔히 좋은 소식(칭찬)과 나쁜 소식(비판)을 함께 전해야 할 때 ‘나쁜 소식-좋은 소식’의 순서를 선호한다. 말하기도 “너는 이런 점은 좋지만 이건 고쳐야 해”가 쉬운 듯 하다. 하지만 효과는 반대다. 칭찬을 받으면 근육의 긴장은 풀리는 반면 비판은 몸을 긴장시키고 각성시킨다. 이 때문에 비판 이전의 칭찬은 쉽게 잊혀지고 비판이 가져온 불쾌한 감정은 선명하게 남는다. 따라서 ‘칭찬-비판’보다는 ‘비판-칭찬’이 훨씬 낫다. “이걸 고쳐볼래? 그러면 너의 저런 장점이 더 빛나 보일거야”라고 말하면 각성한 인체는 비판 다음의 칭찬을 잊지 않는다.

닮아가는 것, 가장 강력한 아부

성격이 외향형인 실험 참가자가 온라인 쇼핑을 한다고 해보자. 똑같이 외향적인 목소리와 말투를 가진 컴퓨터와 내향적인 컴퓨터 중 판매에 더 도움이 되는 건 어느 쪽일까. ‘유유상종’ vs ‘극과 극은 통한다’ 중 답을 찾는 질문이다. 사람은 단연 비슷한 것에 끌렸다. 외향형 참가자는 외향형 컴퓨터에서, 내향형은 내향형 컴퓨터에서 쇼핑할 때 구매율이 높았다. 그렇다면 정반대의 사람에게 끌린다는 얘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비밀은 변화에 있었다.

실험 결과를 보면, 컴퓨터에 대한 호감도는 컴퓨터가 성향을 바꾼 경우 가장 높아졌다. 원래 나와 비슷한 사람보다 나를 닮아가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나와 성격이 정반대였던 배우자가 조금씩 나와 비슷해질 때,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던 두 사람이 공감대를 만들어갈 때 애정과 우정은 싹튼다. 누군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고 싶다면 이게 최선이다. 그를 따라하라.

팀원들이 도대체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당나라 군대’인가. 공통점을 찾아라. 없으면 만들어도 좋다. 공통의 작은 표식, 인사이더들만 쓰는 은밀한 조크 같은 것들 말이다.

방영호 옮김.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