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짭짤한 산업으로 뜬다… 화성 염전서 본 천일염의 미래
입력 2011-09-01 18:16
소금이/바다의 상처라는 것을/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바다의 아픔이라는 것을/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흰눈처럼/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아는 사람은/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이 세상 모든 것이/맛을 낸다는 것을
시인 류시화씨는 자신의 시 ‘소금’에서 소금을 ‘바다의 상처’ ‘바다의 아픔’ ‘바다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바다가 소금 1㎏을 토해내려면 자신의 몸을 33ℓ 말려야 한다.
뉴욕타임스와 헤럴드트리뷴 등에 기고하던 음식전문 작가 마크 쿨란스키는 자신의 책 ‘소금’에서 미국 대륙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의 무역은 이탈리아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소금패권에 의해 좌우됐으며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의 원인 중 하나도 소금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소금은 인류 역사상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었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소금의 중요성을 감안해 국가가 소금을 전매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소금이 오랫동안 식품이 아닌 광물로 분류됐었다. 소금을 다루는 주무부처는 지하자원을 관장하는 지식경제부였다.
그러다 2008년 천일염(天日鹽)이 식품으로 인정되고 2009년 3월 소금관련 업무가 농림수산식품부로 넘어오면서 소금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왜 소금을 주목할까.
포도밭 근처에서 ‘소금이 온다’
경기 화성시 서신면 매화리. 지난 29일 오후 이곳 마을 입구로 향하는 길 양쪽으로 송알송알 포도가 가득 영글어있었다. 제부도와 가까운 이곳은 포도산지로 유명하다. 달콤한 포도향에 취해 구불구불 1차로로 된 길을 조금만 지나자 드넓게 펼쳐진 벌판에서 짠기가 가득 묻어났다. 염전(鹽田)이었다.
매화리와 송교리에 있는 염전은 면적이 134만7790㎡(40만8000여평)다. 우리나라 전체 염전 면적이 4649만㎡(1408만여평)인 점을 감안하면 겨우 2.9%에 불과하다. 염전의 71%(3330만㎡)는 전남 신안 등에 분포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이곳과 안산에서 천일염을 생산한다.
이곳 염전은 한국전쟁 직후 강원도 철원과 황해도 출신 실향민 55명이 근처 제방을 막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천일염을 만들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고교졸업 후 40년간 천일염을 만들어온 이순용(58)씨도 실향민인 아버지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염부(鹽夫)가 됐다.
주변이 모두 포도밭인데 포도 농사 대신 소금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소금농사가 정직해. 포도 농사는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둬들이잖아. 돈도 가을에 받는 거야. 소금은 날씨를 매일 살펴야 해서 고되긴 한데 만들면 언제든지 돈을 받을 수 있거든.”
현금을 그때그때 만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백색의 금, 천일염을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우선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오는 사리기간을 이용해 갑문을 열고 저수지에 물을 가둔다. 이때 바닷물의 염도는 2∼3도 내외다.
“지금이야 전기가 들어와서 펌프로 쉽게 바닷물을 끌어 올려 저장하지만 25년 전만 해도 전기가 없었어. 그래서 일일이 지게에 지고 날랐지. 어찌나 힘들던지.”
20만㎡(약 6만평)에 이르는 저수지에 가둔 바닷물은 수로를 통해 난치(제 1증발지)로 옮겨진다. 330㎡(100평)가량의 평평한 정사각형 모양의 난치에서 일주일가량 햇볕을 쬐면 염도는 6∼8도까지 상승한다. 이런 과정을 10여 차례 거쳐 느티(제 2증발지)로 보내면 염도는 2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
느티의 바닷물을 결정지로 보내 한나절이나 하루를 지내면 염도가 27도 이상 올라가 하얀 소금 꽃이 피기 시작한다. 염부들은 소금 꽃이 피면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소금이 오면 잘 지켜봐야 해. 너무 빠르거나 늦게 거두어도 소금이 쓰고 맛이 없어. 마치 곡식 같은 거야. 적당한 시기에 거둬야 짜지 않고 소금 맛이 제대로 나거든.”
네모난 결정체가 하나둘씩 가라앉기 시작하면 커다란 나무로 만든 밀대(대파)로 소금을 거둬들인다. 이렇게 바닷물이 천일염으로 변신하는 데 꼬박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는 7∼8월 두 달 동안 계속 비가 오면서 소금을 하나도 못 만들었어. 창고 봐. 5∼6월에 온 거 말고는 별로 없잖아. 이제 좀 날씨가 좋아져야 하는데….”
지긋지긋한 비가 그치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이날 이씨는 자신의 염전에서 외발 수레로 두 차 분량(약 200㎏·20만원어치)을 거둬들였다. 날씨가 좋았던 해에 400㎏이상을 수확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밖에 안되는 양이다.
바닷물을 말려 돈 번다
일상생활에서 소금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음식 맛을 내는 것은 기본이고 가죽제품이나 화장품, 배터리, 표백제, 비누, 유리 등을 만드는 데도 소금이 필요하다. 심지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데도 소금이 사용된다.
우리나라 갯벌에서 생산한 천일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게랑드 천일염보다도 칼륨이나 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풍부하다. 당뇨나 비만의 원인이 되는 염화나트륨 성분도 적어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육성이 있을 경우 식품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천일염의 품질과 가격경쟁력, 희소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 천일염은 1㎏에 400원 내외였다. 하지만 프랑스 게랑드 천일염은 1㎏에 12만5000원이었다. 30배의 가격차다.
또 세계적으로 천일염은 우리나라와 프랑스, 포르투갈, 베트남, 일본, 호주, 멕시코 등 7개국에서만 나온다. 전 세계 소금 생산량 26억t 중 천일염은 44만1000t(0.2%, 2007년 기준)에 불과해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38만t을 생산해 86%를 차지했다. 품질면에서 프랑스 게랑드 천일염에 전혀 뒤지지 않는 국산 천일염을 잘 개발한다면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오랫동안 천일염이 식품이 아닌 광물로 분류되면서 체계적인 관리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당장 식용소금과 방부제, 결빙제에 사용되는 공업용 소금과의 구분도 쉽지 않다. 바닷물을 원료로 천일염을 제조하는 상황에서 주변 해역이 오염됐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위생기준 역시 세세한 부분이 마련돼 있지 않다.
대한염업조합 관계자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공업용으로 쓰지만 국내에서 식용과 공업용을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히 없다”며 “명확한 구분 기준이 만들어지면 국민의 불안감도 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염전에서 자생하는 식물인 함초를 제거하기 위해 농약을 사용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전국 1000여개의 염전은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농식품부는 염전을 상대로 긴급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농약 사용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씨는 “몇 년 전인가 강화도의 염전에서 중국산 소금을 섞어서 팔았다가 그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 염전이 없어졌어. 농약을 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거야. 그럼 다 같이 죽는 건데 그렇게 하겠어?”
소금과 염전도 표준·규격화
국산 천일염이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비슷한 품질의 소금이 일정하게 생산되는 표준화와 규격화가 선행돼야 한다. “소금이라는 게 참 묘해. 어떤 염전에서는 같은 바닷물을 쓰는데도 생산량도 많고 품질이 좋은데 어떤 곳에서는 소금에서 쓴 맛이 나거든. 땅의 성질을 잘 알고 소금을 거두는 게 훌륭한 염부지.” 이씨는 염부의 기술력이 소금의 품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한나라당 김학용 의원은 지난 5월말 소금산업 진흥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염관리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이씨와 같이 오랫동안 소금 생산에 전념한 사람을 ‘소금 명인’으로 지정해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염전의 생산시설과 제조, 포장 용기 역시 표준화돼 지역에 관계없이 비슷한 품질의 천일염이 생산되도록 명문화했다.
개정안에는 천일염 포장지에 표준규격품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공공기관에 표준규격 표시가 있는 천일염을 우선 구입하도록 농식품부 장관이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쇠고기와 같이 어느 지역에서 생산됐는지 이력을 알 수 있도록 이력관리제도도 강화된다.
개정안과는 별도로 위생상태를 높이기 위한 염전 바닥재 개선사업도 정부차원에서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일부 염전에서는 소금을 수확하는 결정지의 바닥재로 비닐장판을 사용하고 있다. 이럴 경우 소금 생산량은 높지만 갯벌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썩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비닐장판이 아닌 숨을 쉴 수 있는 세라믹 타일로 교체하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여긴 신안보다 바닷물 염도가 낮아서 소금 만들기가 더 힘들어. 그래도 경기도에선 우리만 남았는데, 그냥 브랜드를 갖고 만든다는 생각밖에 없어.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가 낫다는 옛말이 있잖아. 염전 배운다는 사람 있으면 알려줘야지.”
화성=글 이제훈 기자, 사진 구성찬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