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습기 살균제가 괴질환 원인이라니
입력 2011-08-31 21:33
지난 봄 산모들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원인불명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역학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당시 산모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는데 그 병인이 일상에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살균제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역학조사를 실시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우 원인불명의 폐 손상이 발생할 위험도가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47.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명확한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폐암과 흡연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교차비가 10 이상, 간암과 B형간염은 15∼20 수준에 불과한 점을 보면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 연관성은 매우 높은 셈이다. 실제로 폐 손상 환자들은 평균 3∼4년간 해마다 월평균 1병 정도의 살균제를 넣어 4개월가량 가습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보건 당국은 폐 세포를 배양한 다음 살균제 성분을 묻혀본 실험에서도 세포 손상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런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보건 당국이 사전예방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용 자제를 권고하고 제조업체에 제품 출시 자제를 요청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갈 부분은 1997년 첫 제품이 출시돼 연간 60만개나 팔리는 일상용품의 위해성 문제가 왜 사전에 관리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폐로 흡입되는 물질은 정맥주사를 맞는 것처럼 흡수율이 높다고 한다. 폐에 직접 흡수되는 가습기 살균제가 시장에 나오면 철저히 안전성을 검사하고, 필요하면 규제를 하거나 관리체계를 만들어야 당연하다. 기어코 사망자가 발생해 역학조사가 실시된 뒤에야 약사법에 의한 의약외품으로 지정고시하고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는 등 사후약방문식 부산을 떠는 보건 당국은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인과관계 규명을 위해 3개월가량 추가 역학조사와 위해성 조사가 필요하다니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 주변에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또 다른 허점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