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한은의 ‘금융사 공동검사’ 요구 수용 의무화
입력 2011-08-31 21:19
앞으로 한국은행은 은행뿐 아니라 자금 조달이 막힌 일반 기업에도 직접 대출을 할 수 있다. 또 일반예금뿐 아니라 은행들이 발행한 은행채도 한은 지급준비금 대상이 되며 한은이 금융회사에 대한 공동검사를 요구하면 금융감독원은 반드시 응해야 한다. 저축은행도 한은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응해야 한다. 한은 역할에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이 추가돼 금융위기 예방과 대응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이 확대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통과 뒤 1년9개월을 끌어 온 한은법 개정안이 갖은 곡절 끝에 8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애초 한은이 요구했던 단독조사권과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공동검사요구권이 관철되지 못해 절반의 목표달성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단독조사권은 배제, 공동검사권 의무화=국회는 31일 본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재석의원 238명 중 찬성 147명, 반대 55명, 기권 36명으로 한은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법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은행권에 대한 공동검사 이행 착수 의무기간(1개월)을 대통령령에 명시한 부분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이 한은 요구에 불응하거나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 수 없게 돼 공동조사가 사실상 의무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설립 목적에 금융안정이 추가된 것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기존 한은법에는 물가안정에만 방점이 찍혀 있어 금융위기 시 한은이 최종대부자로서 금융안정 역할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위기에 대응하는 한은의 역할이 커지고 위상이 높아질 근거가 마련됐다.
일반기업에 긴급 유동성을 지원할 때 조건을 완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개정안은 영리기업을 지원할 때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에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할 경우’로 조건을 고쳤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자금 조달이 막힐 경우 한은의 직접 대출이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다. 한은의 지원 폭이 그만큼 넓어질 수 있게 됐다.
지급준비금 대상 범위도 확대돼 은행 위기 시 대응이 수월해졌다. 지급준비금이란 은행이 대량 예금 인출 사태에 대비해 예금과 일부 채권에 일정 비율의 돈을 중앙은행에 적립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은행의 예금채무에만 지급준비금이 부과됐는데, 통과된 한은법은 예금채무와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채무’에 대해 지급준비금을 쌓아야 한다고 돼 있어 금융채에도 지급준비금 부과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애초 핵심 사안으로 지목된 한은의 금융권 단독조사권과 한은 결제망 참여 금융사에 대한 공동검사요구권이 삭제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갖은 우여곡절 끝 통과=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한은법 개정안은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당초 기획재정위가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은 2009년 12월 법사위에 상정됐다. 하지만 금융당국 등의 반발로 1년6개월 이상 국회를 표류하다 올해 초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가 터진 뒤부터 다시 관심을 끌었다.
6월 임시국회 때 법사위가 한은 단독조사권을 배제한 수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본회의에서는 여당 내 이견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8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에 극적으로 표결 통과됐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