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트리폴리 르포] 18세 여학생 수류탄 들고 식탁 등장… 가족들 경악

입력 2011-08-31 21:25


지난 30일 오후(현지시간) 리비아 트리폴리에 사는 무니르 알미스라티(55)씨 가족은 금식 후 첫 식사인 ‘이프타르’ 자리에서 ‘수류탄’ 소동으로 진땀을 뺐다. 고등학교 3학년 딸 마르와(18)양이 카다피의 요새 밥 알아지지아에서 ‘롬마나’라고 부르는 리비아식 세열수류탄을 주워 식사자리까지 들고 온 것. 아랍어로 석류란 뜻의 ‘룸마나’는 폭발하면 석류 알갱이 같은 모양의 쇠구슬 1000여개가 반경 15m까지 터져 퍼지는 인마 살상용 수류탄이다.

무니르씨 부부는 느닷없는 수류탄의 등장에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파타 대학교 1학년 무하마드씨와 중학생 라마단군 등 그의 자녀들은 오히려 “멋있다”고 탄성을 지르며 수류탄을 만지작거렸다. 이들은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폭발 위험이 있는 수류탄을 들고 식탁 앞에서 기념촬영까지 했다. 이 자리에 함께 있던 기자에게 무니르씨는 “집집마다 젊은이들이 AK소총에 수류탄은 물론 기관총까지 차에 장착해 놨다”며 “총기 사고가 터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간인들이 제한 없이 군용 무기 등을 소지하면서 최근 트리폴리 도심 한복판에서 총기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9일 오후 2시쯤 가르가르에쉬 거리 주유소에서 알래 알라흐만씨 등 20대 중반의 남성 2명이 서로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옆에 있던 2명은 스쳐간 총알에 중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 후송됐다. 라흐만씨 등은 수개월 만에 주유소에 기름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앞다퉈 주유를 하려다 다투는 과정에서 소지하던 총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트리폴리 구시가지에 위치한 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밥 알아지지아 군부대 무기창고가 시민군에게 넘어간 이후 개인소총에서 전차 등을 폭파시킬 수 있는 유탄발사기, 수천발의 유탄까지 다량의 화력 장비가 젊은이들 손에 넘어갔다. 경찰서 앞에서 허공을 향해 총을 쏘는 젊은이를 보던 이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젊은이들로부터 총기를 어떻게 회수할지 캄캄하다”며 “인샤알라(신의 뜻대로)”라고 말했다. 이어 “총격전으로 얼마 전 사망한 2명도 입건조차 할 수 없다”며 “리비아는 현재 무법 상태”라고 덧붙였다.

시민군들은 카다피를 체포하는 순간까지는 총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스라타 전투에서 중대급 규모를 지휘한 오마르 레미(35)씨는 “일부 학생들이 영웅심리로 거리에서 주운 총을 들고 다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작은 문제로 큰 목적을 잃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석조 특파원 트리폴리=글·사진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