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위험] “폐질환 환자군, 살균제 사용때 폐손상 유발 47배”

입력 2011-08-31 21:41


보건당국은 31일 원인 미상 폐손상의 발생 원인을 중간 조사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습기 살균제가 치명적 폐손상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도 인과 관계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 원인?=질병관리본부는 서울 시내 A대학병원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 증상으로 입원했던 18명을 환자군으로, 같은 병원 호흡기내과 등에 입원한 적이 있는 121명을 비환자군(대조군)으로 설정해 호흡기 질환 위험 요인을 파악했다. 그 결과 환자군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우와 대조군에서 살균제를 사용한 비율의 차이인 교차비(Odds ratio)가 47.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살균제를 사용할 때 폐손상 발생 위험도가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47.3배 높다는 뜻이다. 폐암과 흡연의 교차비가 10 이상, 간암과 B형 간염의 교차비가 15∼20 수준임을 감안하면 살균제가 폐손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제한적인 조건에서 인간의 폐세포를 배양한 뒤 세포의 변성·손상 등을 확인하는 실험을 한 결과 일부 살균제가 폐손상을 유발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폐세포를 시험물질에 담그는 방식을 사용해 가정에서 가습기를 사용하는 경우와는 조건이 달라 한계가 있다. 또 조사 대상이 20세 이상 성인이고 원인 미상 폐질환이 다수 발생했던 소아가 포함되지 않은 점, 조사 대상이 병원 한 곳에 국한된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2개 핵심 성분명 밝히지 않아…다른 생활 제품도 사용 불안=보건당국은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면서도 구체적 성분명은 밝히지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판매 중인 가습기 살균제는 다국적 기업에서 생산하는 것을 포함해 3개 제품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이들 제품에는 폐손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일 핵심 성분 두 가지가 들어있지만 명확히 원인 물질로 확정되지 않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 성분이 화장품, 샴푸, 물티슈, 기타 가정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 에 방부·살균 기능을 위해 사용되고 있어 인체 유해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호흡을 통해 장시간 노출되는 경우는 가습기 살균제가 유일했으며 다른 제품에서는 유사 노출 경로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품은 관련 법령에 따라 허가, 안정성 확인 등 절차가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해당 성분의 피부 접촉이나 섭취 등을 통한 폐손상 가능성에는 “폐로 흡입되는 것은 피부를 통한 흡수와 농도 차이가 크다”며 “다른 제품의 위험성이 보고된 임상 사례는 없다”고 일축했다.

◇환자 절반이 임산부, 올해 환자가 유독 많은 이유는=2004년부터 최근까지 파악된 미확인 폐손상 환자는 모두 28명으로 이 가운데 13명이 임산부다. 연구 대상 18명 중에는 8명이 해당된다. 보건당국은 임신·출산 이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임산부들은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유해한 성분을 흡입할 위험이 더 높다. 또 임신을 하면 호흡량이 30% 정도 증가해 같은 시간 노출되더라도 유해 성분을 더 많이 흡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유독 환자가 많은 것은 매년 발생 추이는 비슷했지만 올해 특정 병원으로 중증 환자들이 집중되면서 많아 보일 수 있으며, 지난겨울이 유독 추웠기 때문에 실내생활을 오래 하면서 유해성분에 더 많이 노출됐을 가능성으로 해석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