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문일] 뉴 리더 오세훈
입력 2011-08-31 17:49
“대세론 믿다가 동력 잃은 한나라당의 심각한 위기를 누가 구할 건가”
적지(敵地)에 고립되거나 적군에 포위되어 싸워야 하는 군대를 고군(孤軍)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의 흔쾌한 지원 없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감당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그 짝이었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그를 계백 장군에 비유했다. 같은 이름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기에 짝짓기 쉬웠겠지만 계백보다 이순신 장군이 적합한 비교다. 계백은 왕의 기대를 업고 출전했고, 이순신은 왕의 시기와 위협에 시달리면서 왜적과 싸워야 했다. 한나라당 포퓰리스트들로부터 비방 받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서 지원을 거절당한 오세훈은 이순신과 마찬가지 고장(孤將)이었다. 이순신은 마지막 싸움에서 전사했지만 민족의 정신 속에서 영원한 삶을 얻었다. 오세훈은 주민투표에서는 패배했지만 정치적 손익에서는 패배하지 않았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여 오세훈의 기회가 반드시 5년 후라는 건 아닐 터다.
오세훈은 조선시대 육조(六曹)거리를 복원한다는 의미로 2009년 8월 광화문 광장을 완성하고 세종대왕상을 앉혀 놓았다. 서울을 문화도시로 만들려는 오세훈의 창의시정은 이순신의 무(武)가 압도해 온 광화문 거리를 세종대왕의 문(文)으로 균형 잡으려 했다. 그러나 야당의 절대 다수 하에 있는 시의회와 그가 무상급식 문제를 두고 대립한 끝에 주민투표로 해결하려 한 방식은 이순신의 상유십이척(尙有十二隻)과 같은 기상이었다. 오세훈은 주민투표 패배를 통해 그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던 문의 이미지를 벗고 무의 이미지를 얻었다. 광화문 광장의 아이러니다.
오세훈을 고립시킨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 기득권 정당임을 드러냈다. 저들이 민주당의 복지 공약을 열심히 베끼는 것은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 결과 집토끼 산토끼도 모두 잃고, 볼수록 매력 없는 정당이 됐다. 민주당을 따라하는 ‘따라쟁이’들이 큰소리를 치는 해괴한 정당이 됐다. 그럴수록 한나라 당내 정치에서 벗어나 보수의 가치를 지키려 한 오세훈이 보수세력의 희망이 되면서 자신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한 사람으로도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공짜 복지 디자인이 부풀어 나고 있는 지금 그 한 사람은 공짜 포퓰리즘에 처음 불을 지른 정치인, 교육감일 수 있다. 그러나 결과를 만든 것은 서울 시민이다. 국가 흥망에 필부(匹夫)도 책임이 있다는 옛사람의 말이 옳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는 한 사람이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지금 한나라당은 공짜복지 늪에 빠진 나라와 당을 구할 한 사람의 출현을 목 빼고 기다려야 할 처지다. 한나라당 사람들만 이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웃 일본에 54세 총리가 탄생했다. 그 자리를 다음 차례로 미룬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상은 49세로 오세훈보다 한 살 아래다. 장로(長老)들이 지배해온 일본 정치도 세대교체가 빠르다.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무기력, 무능력, 무전략을 보면 노인병 수준이다. 내년 대선 구도를 보더라도 대세론에 눌려 동맥경화 증세가 심각하다. 대세론은 방어전이다. 민주화 이후의 역대 대선에서 방어전으로 이기는 확률은 낮았다. 치고 올라가는 사람이 잘 이겼다. 한나라당이 쓰러지지 않으려면 혈전(血栓)을 뚫어줄 뉴 리더가 필요하다. 미국처럼 초선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도 대통령직에 도전할 수 있는 활기가 있어야 한다.
야권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문재인 변호사를 보라. 문재인 자체보다 문재인을 키우는 동력이 있다는 점이 희망이다. 강력한 대선 후보에 대한 갈구(渴求)가 문재인을 눈사람 커지듯 키우는 동력이다. 권력의지가 없다는 문재인은 릴레이 주자 역할에 그칠지라도 그가 키운 동력으로 최종주자가 대폭발 할 수 있다.
오세훈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정치는 생물(生物)이다. 정치인이라면 주역이건 조역이건 간에 기회를 엿보는 기심(機心)이 있다. 대선 드라마는 몇 번이고 요동치게 마련이다. 서울시장 5년 실적으로 능력은 증명됐다. 오세훈은 내년 한나라당 경선에 나와야 한다. 시대의 요구는 누운 코끼리를 일으킬 수 있다.
문일 카피리더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