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홀사모의 삶을 아시나요?

입력 2011-08-31 17:17


[미션라이프] ‘삶의 이유였던 교회에서/ 남편 목사님의 소천으로 인해/ 세상으로 내어 쫓긴/ 강도 만난 나그네가 되었다/ 하나님이 야속하기도 하고/ 세상이 무섭기도 하다/ 허우적거려보는 내 모습이/ 찬 서리 맞아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구나.’(이정정 예수자랑사모선교회 회장의 ‘홀사모 이야기’)

목회자인 남편을 잃고 홀로 지내는 사모를 홀사모라고 한다. 성도와 자녀 앞에서 태연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삶은 고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2004년 12월 폐암으로 남편을 먼저 보낸 이현주(49) 사모는 홀사모의 삶을 그대로 말해준다. 그녀는 과거를 떠올리자 목소리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감신대 82학번인 남편 김태현 목사는 성도 50명의 작은 교회를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교회 리모델링 비용이 초과하자 2003년 10월 인건비라도 아끼겠다며 직접 나서서 무리하게 공사에 참여했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설교를 하는데 김 목사의 발음이 어눌했다. 인천 길병원에 가보니 폐암 말기 판정이 나왔다. 2004년 6월 항암치료에 들어갔고 11월 뇌까지 암세포가 퍼졌다. “올해 넘기기가 힘들다”는 의사의 차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엔 “어떤 일이 있어도 남편을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이 남편을 데리고 가신다면 순종하겠습니다. 데리고 가시는 날까지 고통이 없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로 바뀌었다.

“여보, 나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싶어. 목사가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는 없잖아.” 12월 20일 충남 당진의 기도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옷을 입다가 쓰러졌다. 그게 45년 인생 마지막 날이었다.

“남편의 죽음을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임종을 맞이하니 차분해지더군요. 사실 가장 큰 걱정은 교회 성탄절 행사였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사모와 두 남매가 빠지면 성탄절 행사가 정지될 것 같았어요. 우리 가족 때문에 교인들이 슬픈 성탄절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때 이 사모의 나이가 41세였다. 장녀는 중학교 1학년, 막내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두 남매에겐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는 성경 속 인물이라 할지라도 병들어 죽듯이 그게 인간의 삶”이라면서 “신앙인이라고 해서 어려움을 모두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쳤다.

남편도 없는데 교회 위층에 자리 잡은 사택에서 1년 넘게 산다는 게 눈치 보였다. 속회를 인도하기 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웃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고심 끝에 2006년 교회를 옮기고 인천 도림동의 한 임대아파트로 들어갔다.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40군데에 이력서를 냈고 여행사 행정보조, 아파트 공사현장 사무실, 노인복지시설 보조, 상패제작회사 직원 등으로 전전했다. 월급이라고 해봐야 100만원이 전부였다. 그나마 남편이 기독교대한감리회 연금에 가입돼 있어서 유족연금으로 매달 20만원 가량 나온다.

“남들이 측은하게 걱정해 주는 게 오히려 거북했어요. 일반 직장도 남편이 사망하더라도 전적으로 도와주는 건 아니잖아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홀사모가 너무 교회를 의지하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봐요.”

이 사모는 교회를 몇 차례 옮기고 목회자 사모였다는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는다고 했다. “한번은 옮긴 교회에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아빠가 목사님이었다고 이야기를 했나봐요. 그 다음주부터 성도들이 와서 ‘어쩐지 뭔가 다르긴 다른 것 같았다’며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때부터 아예 집안이야기는 꺼내지 않아요. 소그룹 모임, 심방도 피하고 있고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40대 중년 여성이 마음의 고통을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것 같았다. 생각 없이 불쑥 질문이 나와 버렸다. 아차 싶었다. “아니, 그럼 여태까지 그 고통을 삭히며 살아오신 겁니까?” “….”

대학교에 재학 중인 두 남매의 학비문제가 가장 컸다. 한 학기에 납부해야 할 등록금이 8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남들은 홀사모가 어떻게 대학생 둘을 키울 수 있냐고 반문한다. 감사하게도 장녀는 장학금을 받아왔다. 막내아들 학비는 남편이 시무하던 교회의 교인이 책임져 줬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손길이 있더군요. 하나님이 어떻게든 채워주시는 경험을 해요. 하지만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져서 직장이 위태위태해요. 상패 제작업체가 워낙 경기에 민감한 곳이라서요. 그래서 좀 걱정이 되요.”



목회자유가족돕기사랑나눔운동본부는 수원대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장녀 김영솔(20) 씨에게 최근 장학금 150만원을 지급했다. 이 사모 가정을 방문한 김진호 운동본부 대표는 “홀사모 가정은 교단과 교회도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이며 강도만난 이웃과 같다”면서 “자녀 교육문제가 가장 큰 문제인 만큼 장학금을 적극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녀 김씨에게 장학금을 계속 지급하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인천=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