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만 망덕포구… “전어잡이 만선” 노을 너머 가을이 오고 있네

입력 2011-08-31 18:05


섬진강 하구의 망덕포구가 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로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강바닥에는 참게와 재첩이 바글거리고 강변은 계절 따라 은은한 수채화를 그리는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흐르는 생명의 강. 가을 전어는 실핏줄 같은 개울이 모여 흐르는 섬진강이 550리 고된 여정을 마무리하고 바다와 만나 휴식을 취하는 전남 광양의 망덕포구 일대에서 떼를 지어 은빛 비늘을 번쩍이고 있다.

갯마을의 소박함이 묻어나는 진월면의 망덕포구는 예로부터 전어잡이로 유명한 곳. 포구 맞은 편 산에 오르면 덕유산이 보인다고 해서 망덕(望德)이라는 서정미 넘치는 이름을 얻었다. 포구 앞의 솔섬도 건너편 망덕산을 향해 절하는 형상이라 배알도(拜謁島)라는 운치 있는 이름으로 불린다.

전어는 가을을 대표하는 생선으로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사는 이가 돈을 아깝게 여기지 않아 전어(錢魚)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얼마나 고소했으면 “가을전어 머리엔 참깨가 서말”이라는 말과 함께 “집 나간 며느리도 가을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는 속담까지 생겨났을까.

지구온난화로 최근에는 충남 서천 일대에서 전어가 많이 잡히지만 원래 전어는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이다. 그중에서도 섬진강 맑은 물이 바닷물과 만나는 망덕포구 일대는 전어의 먹이가 풍부해 다른 지역 전어보다 크고 통통한데다 가을철에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른다. 섬진강과 광양만에서 잡히는 전어에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는 이유다.

검은 하늘과 검은 바다의 경계조차 모호한 새벽녘. 망덕포구를 출발한 전어잡이 어선들이 수로 같은 바다를 달려 광양만으로 속속 모여든다. 전어잡이 어선은 말이 어선이지 대부분 노부부 2명이 탄 조그만 모터보트에 불과하다. 남편은 그물을 걷어 올리고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그물에서 전어를 분리하는 일을 맡는다.

요즘은 그물을 끌어올리는 기중기가 어선에 설치돼 있지만 예전에는 그물을 일일이 손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전어잡이 어선은 두 척이 함께 나간다. 각각 6명의 어부가 탄 배는 전어떼를 만나면 그물을 결합시켜 둥그렇게 에워싼 다음 다시 두 배가 만나서 그물을 당겨 올린다. 워낙 고된 작업이라 어부들은 ‘진월 전어잡이 소리’로 불리는 노동요를 부르며 호흡을 맞춘다.

“자 전어 많이 들었응께 양반들 쪼끼 준비허고 배에다가 퍼실어보세 자 퍼심으로 우리 재밌으먼 한자리 해야지/ 어낭차 가래야/ 어낭차 가래야// 얼씨고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어낭창 가래야// 갱사났네 갱사났어/ 어낭창 가래야// 우리 사군들 갱사났네/ 어낭창 가래야// 이로마 했으먼 넉넉하지/ 어낭창 가래야//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어낭창 가래야.”

앞소리꾼이 소리를 매기면 나머지 어부들이 후렴구를 받쳐주는 ‘진월 전어잡이 소리’는 작업에 따라 소리의 빠르기와 가락이 변화한다. 애잔한 가락 사이로 매우 구성지고 흥겨운 장단은 노동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그물에 든 고기를 가래로 뱃전으로 퍼 올리는 장면에서 부르는 가래질 소리는 매우 흥겨워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한밤의 광양만은 거대한 야화나 다름없다. 고양이 형상의 묘도를 사이에 두고 광양제철과 여수산단의 불빛이 검은 바다에 물감을 흩뿌린 듯 색색으로 물든다. 일엽편주 어선들이 밤바다를 왔다갔다 그물을 당기는 모습이 색도화지에 그린 그림처럼 황홀하다.

전어는 다른 생선과 달리 한밤에 잡는다. 한낮에는 수심 30m 바닥에서 뻘에 가라앉은 플랑크톤 등을 먹고 살지만 밤에는 수면 가까이 올라와 물에 떠다니는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기 때문이다. 또 전어는 다른 생선과 달리 눈이 밝아 낮에는 그물을 알아채고 피한다고 한다. 이래저래 어부들이 한밤에 전어잡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광양만에서 전어를 잡는 어선은 하루 20∼40척. 금어기가 끝나는 7월 초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말까지 광양만은 전어잡이 어선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그물을 걷어 올리자 검은 바다에서 헤엄치던 씨알 굵은 전어들이 퍼덕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선 한 척이 하룻밤에 잡는 전어는 30∼40㎏. 운이 좋아 전어떼라도 만나면 200㎏도 잡는다. 이때는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전어가 나뭇가지에 무성하게 달린 잎사귀처럼 보인다고 한다.

광양만 중심에 위치한 묘도 뒤편에서 해가 뜨기 시작한다. 광양에서 묘도를 거쳐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 교각 뒤로 하늘과 바다가 황금색으로 물든다. 황금빛 바다에서 올라오는 전어도 황금색 비늘을 번쩍인다. 전어잡이를 끝낼 때가 됐다는 신호다. 전어잡이 어선들이 싱싱한 전어를 횟집에 넘기기 위해 앞다퉈 물살을 가르며 망덕포구를 향해 속도를 높인다.

광양만의 전어는 가뭄으로 섬진강 수량이 줄어 염분 농도가 높아지면 양질의 먹이를 찾아 섬진강을 거슬러 오른다. 전어는 주로 청매실농원 앞까지 올라가지만 밀물로 염분 농도가 더욱 높아지면 하동 악양들판 앞까지 올라간다. 이때는 전어잡이 어선들도 함께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광양의 수려한 형세와 후덕한 민심에 반해 ‘조선지전라도(朝鮮之全羅道)요 전라지광양(全羅之光陽)’이라고 극찬했다. 만약 박문수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광양 전어 맛을 봤더라면 ‘광양지전어(光陽之錢魚)’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을까.

광양=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