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세계육상] 金 놓친 류샹 “재경기는 불공평”
입력 2011-08-30 18:21
“재경기를 하는 것은 다른 선수들에게 공평하지 않다. 저에게 게임은 즐기는 것이다.”
29일 오후 9시25분 남자 110m 허들 결승전에서 다이론 로블레스(25·쿠바)의 손에 막혀 우승을 놓쳤던 류샹(28·중국)의 대답치곤 다소 싱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억울한 은메달이라고 생각할 만했지만 막상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류샹은 ‘대인’다운 풍모를 풍기며 결과에 승복했다. 더욱이 기자회견이 자정을 넘기는 시간까지 이어졌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끝까지 답하며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류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로블레스의 행동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경기장 밖에서 로블레스와 친한 사이다”며 “즐겁게 경쟁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돼 안타깝다”고 경기 상황을 떠올렸다. 경기 후 도핑룸에서 로블레스에게 실격 사실을 맨 먼저 알려줬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류샹은 “실격 소식을 TV에서 보고 도핑룸에 같이 있던 로블레스에게 ‘너 실격 당했어’라고 말해줬다”며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화제를 곧바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다음번에 로블레스를 만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친구야, 안녕’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답했다.
류샹의 담담한 반응과 달리 중국 현지 언론과 여론은 류샹의 은메달에 크게 낙담해하는 분위기다. 30일 경화시보, 신경보를 비롯한 주요 신문들은 1면에 류샹의 팔을 건드리는 로블레스의 사진을 게재하며 집중 보도했다. 신경보는 “최후의 두 개 허들에서 로블레스가 검은 손을 뻗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기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인터넷에서도 로블레스를 성토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시나닷컴 등 중국의 매체는 이번 사건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과 비교하며 ‘육상판 신의 손’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로블레스를 원망하지 않은 류샹의 행동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금메달만큼 값진 은메달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경보는 “대범하게 로블레스를 책망하지 않았다”며 류샹을 높이 평가했다. 또 중국 언론들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던 류샹에게 은메달을 수여했다고 전하며 류샹의 메달이 ‘금색의 은메달’이라고 치켜세웠다.
대구=김현길 최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