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고용률 분석] 제주, 일자리 천국?… 노인·여성 상당수 농사·알바
입력 2011-08-30 18:25
제주는 고용률 전국 1위를 자랑한다. 60세 이상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일을 하고 30∼40대의 고용률은 80%를 웃돈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늦도록 일을 하니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제주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높은 고용률, 고용의 질은?=제주발전연구원 고승한 연구실장은 “대대로 감귤 등 농업의 비중이 높아 타 지역에선 은퇴할 나이인 70∼80대 노인들이 계속 농사일을 하는 것이 고령자 고용률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의 지역 내 총생산 대비 농림어업 생산액은 19.8%로 전국 평균(6.6%)의 3배다. 제주 청년의 상당수는 육지로 나간다. 고향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시 이도동에 사는 김경철(28)씨는 고시생이다. 고향 제주를 떠나 수도권 대학에서 유학했지만 졸업 후 취직이 안돼 다시 제주에 내려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친척이 운영하는 서귀포시 표선면 망고과수원으로 일을 나간다. 짬짬이 농장 일을 돕고 용돈과 학원비를 조달하는 것이다. 김씨는 “졸업 후 여기저기 원서를 내보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며 “제주 지역은 대기업이 없기 때문에 원서를 낼 곳도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제주 지역에서 생활하는 데는 공무원이 가장 좋은 직업이란 생각에 아예 지방 공무원 시험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김씨처럼 가족의 일을 돕는 ‘무급 가족 종사자’의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2∼3% 포인트 정도 높다. 취업 준비를 하다가도 일손이 필요한 감귤 농사철에는 가족의 일을 돕는 것이다. 30대 고용률은 81.3%, 40대는 83.6%에 이른다. 한창 일할 연령대의 노는 일손이 거의 없는 셈이다.
제주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제주도 내에 종업원 수 1000명 이상의 기업은 단 한곳도 없다. 제주 지역에서 열리는 취업 박람회에는 초봉 3000만∼4000만원 수준의 일자리를 찾아볼 수 없다. 지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 미만이고 농업과 서비스업 중심이라 청년층이 원하는 일자리가 적은 현실이다.
◇제주 엄마들의 ‘알바 뒷바라지’=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활발한 것도 제주의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제주의 여성 고용률은 57.0%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남자들이 풍랑에 목숨을 잃으면 여자들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섬 지역 특성과 4·3사태 등 혼란기 경험이 제주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의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제주시 오라동의 주부 김원희(48)씨는 사고를 당해 누워 있는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횟집에 나가면서 ‘알바 인생’을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부담감을 덜기 위해 지인의 소개로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옮겼다. 조금이라도 조건이 좋으면 미련 없이 일자리를 옮긴다. 보통 6개월 단위로 직장을 옮겼다고 한다. 마늘, 감자, 당근, 감귤 수확 등 제주의 경우 시기적으로 노동 일감이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은 거르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다.
김씨는 “농사일은 고되긴 하지만 일당이 그런대로 많고 경력과 나이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 지역 주부들은 생활비와 자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고용의 질을 따지지 않고 영세업체나 노동현장에 무조건 취직해 벌이에 나서는 주부 문화가 형성돼 있다.
고 실장은 “제조업 부분이 워낙 취약해 농업과 서비스업만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며 “향토 자원을 활용한 수출 산업을 육성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고용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선정수, 제주=주미령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