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 된 카다피 요새 수천명 ‘인증샷’… 노석조 특파원, ‘밥 알아지지아’ 르포

입력 2011-08-30 23:04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살던 밥 알아지지아 요새는 시민군의 공격을 받아 잿더미가 됐다. 하지만 ‘찬란한 문’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그가 얼마나 호화로운 생활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30일 카다피 정부군과 시민군 사이에 치열한 결전이 벌어졌던 트리폴리 남쪽 밥 알아지지아를 찾았다. 높이 3m, 두께 1m의 콘크리트벽은 50m 간격으로 6㎢ 넓이의 단지를 세 겹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벽을 지나기 위해 두꺼운 철문을 통과해야 했는데, 문 양쪽 위로는 저격수용 총구가 보이는 고공 초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세 겹의 관문을 하나하나 통과해 단지로 들어가자 녹색 잔디밭이 펼쳐졌다. 사막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메마른 토양에 잔디밭과 함께 굵직한 야자나무가 수백 개의 황금색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곳곳에 솟아 있었다.

‘찬란한 문’에는 카다피의 관저와 함께 그 자식들의 개인용 저택, 최첨단 의료장비가 설치된 종합병원, ‘카미스 여단’으로 불리는 32여단 부대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카다피는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에 외부와 단절된 또 하나의 ‘카다피 왕국’을 건설해 놓고 생활해 왔던 것이다.

‘카미스 여단’ 본부의 출입문은 반원구 모양으로 우리나라 흥인지문 정도 크기였다. 건물 정수리에는 양팔을 펼치고 있는 독수리상이 카다피 관저를 향해 세워져 있었다. 젊은이들은 이 독수리상에 올라가 국가과도위원회(NTC) 국기를 펼치고 “카다피를 잡아 없애자”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목소리는 해방감과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부대 건물을 지나자 밥 알아지지아 본부 건물이 나왔다. 시민군의 공격으로 골격만 남아 있었다. 이미 이곳에 있던 이탈리아제 가구와 최고급 양모 카펫은 시민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갔지만 소형 비행기 모형은 건물더미에 묻혀 그대로 있었다.

본부 건물 앞 잔디밭 속으로 난 비밀 통로 철문을 열자 깊이 3m의 통로가 미로같이 이어졌다. 지하 비밀 통로의 벽면은 하얀 페인트가 깨끗하게 입혀져 있었으며 빨간 라인과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카다피 정권의 상징이던 밥 알아지지아는 마치 리비아 혁명의 성지로서 시민들의 관광지가 된 듯했다. 이날 밥 알아지지아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가족 단위 또는 친구들과 함께 승용차를 몰고 찾아들었다. 저마다 총탄에 폐차가 돼 버린 카다피의 고급 관용차 옆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찌그러진 차 문에 발길질을 해대며 42년 독재정권에서의 삶을 깨끗이 씻으려는 듯했다. 시민군은 타고 온 지프를 세워 놓고 시민들 앞에서 총구를 하늘로 올린 뒤 수십 발을 발사했다. 시민들은 총소리에 맞춰 “카다피는 이제 없다. 리비아에는 자유가 있다”고 외쳤다.

트리폴리=글·사진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