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환한 보름달
입력 2011-08-30 17:54
‘벌초 차량 몰려 고속도로 정체’라는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 시간 뒤 집에 들른다는 동생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을 보름 앞두고 남동생 둘은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갔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이면 우리 집에 들렀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누나는 안 붙여줘. 우리가 벌초하고 올게’하며 저희들끼리 약속을 해서 간다. 직장생활 하는 누나를 배려해서 그런 것임을 왜 모르랴.
집에 들르면 그들은 잠깐 차를 마시고, 다리를 쉬었다 갔다. 오늘도 차와 얼음을 확인하고, 과일을 준비했다. 매년 동생들은 집에 들어서면 땡볕에서 풀을 깎느라고 지친 얼굴이 역력했다. 땀이 밴 셔츠는 후줄근하고 구릿빛 팔의 힘줄이 더 불거져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뉴스를 보니 여간 늦지 않을 것 같다.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진다. 동생들에게 무얼 챙겨 보낼까. 강원도에서 아는 사람이 보내준 감자 한 박스가 생각났다. 비닐봉지에 감자를 담았다. 점점 불록해지는 봉지를 묶으며 빈 곳에 두어 개 더 집어넣고 손을 턴다. 냉동실의 옥수수를 모두 큰 솥에 넣고 쪘다. 더운 김이 나는 걸 소쿠리에 담으니 알갱이들이 터져 나온 게 보기만 해도 소담스러웠다. 김이 식을 동안 저녁 찬 준비를 하러 나갔다.
채소와 양념을 사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할 무렵 전화가 왔다. 큰 동생이었다. 아버지뿐 아니라 할아버지, 큰아버지 산소까지 살피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다 몇 년 만에 사촌형 집에 들렀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 폭우에 배나무를 키우느라 고생한 얘기 듣다 보니 출발이 늦었다고 했다. 그런데 여주에서 길이 밀려 거의 주차장이라고 한다. 아우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이 피곤함이 섞여 있었다. “들르지 말고 그냥 가렴. 추석도 가까우니.” 나는 서운함을 감추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사람들은 죽으면 왜 매장을 고집했을까? 땅덩어리 좁은 나라에 매장이라니. 더군다나 한식과 추석에 벌초하러 가야 하고, 교통 체증에 시달리고.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수목장 부지가 생겼다기에 나는 내심 흐뭇해했다. 실제로 어느 나무 밑에 자리를 잡을까 하고 가보았다. 얼마나 근사한가. 나무 밑에 누워 그 나무의 거름이 되어 다시 나무로 환생하는 것이.
그런데 오늘 벌초 간 동생들을 기다리며 나는 문득 매장이 후대 자식들의 우애까지 염려한 조상들의 깊은 뜻이지 않나 싶었다. 같은 서울 하늘에서도 바빠서 얼굴도 못 보는 형과 아우가 오고 가는 길에 마음을 터놓을 것이다. 또 시골의 사촌과도 오랜만에 만나 물리적인 먼 거리를 심리적으로 가깝게 해놓았을 것이다.
나는 봉지 봉지 싸놓은 것을 다시 풀어놓았다. 동생들이 들르지 못했지만 오늘 모처럼 어릴 적 동생들 밥 차려주던 시절의 누나로 돌아갔다. 아무리 벌초 갔다 오는 길이 막혀 있어도 우리 남매 우애의 길은 씽씽 달려가는 길임에 틀림없다. 올 추석에는 유독 환한 보름달을 보고 나 혼자 웃음 지을 것 같다.
조미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