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링컨, 킹, 워싱턴 정치

입력 2011-08-30 18:08


“분열된 집(a house divided)은 살아남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정부도 지속될 수 없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1858년 공화당 지명으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첫 출마하면서 거물급 현역인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노예제도로 극심하게 대립하던 당시, 미국민들의 통합과 단결을 강조한 ‘The House Divided Speech’는 게티스버그 연설과 함께 링컨의 가장 유명한 연설이다.

국가통합을 우선시한 링컨의 정치적 리더십은 이를 저해하는 최악의 요소로 노예제도를 꼽았다. 노예제도가 존속되는 한 미국은 두 쪽이 날 것으로 봤다. 노예제도 폐지는 그의 국가통합 우선 정책의 산물이다. 링컨은 이 선거에서 패한다. 하지만 미국의 단결과 통합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노예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그를 정치 지도자급 반열에 올려놓는다. 남북전쟁 위기가 감돌면서 단결과 통합 주장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대선에서 승리, 1861년 16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링컨기념관에는 국가통합을 위해 노예제도 폐지를 추진하는 링컨의 고뇌가 배어 있다. 기념관에는 링컨이 장관 및 고위 참모들과 노예제도 폐지 선언 여부, 시점 등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조형물이 있다. 국무회의였다. 당시 실제 회의 참석자들의 명단과 함께 그들의 찬반 입장, 이유들이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대부분이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에 불만이었다. 급진주의자들은 노예해방을 좀더 과감하고 빠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론자들은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링컨은 양쪽 극단주의자들부터, 공화당 내부로부터 협공을 받는다. 하지만 뛰어난 정치적 리더십으로 이들을 설득하며 결국 목적을 이뤄낸다. 미국민들이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의 핵심은 바로 국가를 통합시키고, 미국을 하나로 유지시킨 그의 리더십 때문이다.

지난 28일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3년 워싱턴DC 내셔널 몰의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서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을 한 지 48년째 되는 날이었다. 허리케인으로 연기되긴 했지만 추진 43년 만에 완성된 킹 목사 기념관의 헌정식이 예정됐었다. 이 기념관은 워싱턴DC의 링컨, 제퍼슨, 루스벨트 기념관 등 역사에 남을 전직 백인 대통령 기념관들에 둘러싸인 요지에 위치한다. 내셔널 몰 최초의 흑인 기념관이기도 하다. 이 또한 미국 통합의 상징이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지 꼭 100년째 되는 해에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태어났다. 킹 목사의 워싱턴DC ‘입성’은 그보다 50년이 더 필요했다. 미국 역사는 일면 이같이 부단한 통합의 역사다.

미국은 지금, 근래 들어 가장 분열돼 있다. 통합의 정점일 수도 있는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시대에 극심한 분열상을 보이는 것은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다. 어쩌면 통합이 아직도 요원한 것인데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양극화 현상이나 경제위기 등 외생 변수들로 인해 더욱 분열이 극심해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의 분열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 때문이라는 점이다. 공화당과 티파티는 재정적자를 집중 공격한다. 공화당 정권에서 두 개의 전쟁을 일으켜 천문학적 전비를 쏟아붓느라 적자가 늘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런데 애써 외면한다. 재정적자가 늘면 국가가 망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복지 예산에 손도 못 대게 한다.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고, 갈라진 양 극단의 정치인들은 상대 쪽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자기 말만 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은 지금,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통합적 리더십으로 슈퍼파워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서서히 무너져 가느냐. 링컨이 오바마와 워싱턴 정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스프링필드=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