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노경남 (11) 인생의 위기에서 ‘산 진리’를 배우다
입력 2011-08-30 19:31
부모가 잠시 방심하고 있던 사이 계단에서 추락한 아이는 서울 중앙대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한 달 동안 뇌와 복부에 7차례의 대수술을 진행했다. 죄책감이 컸다. ‘주님, 왜 이렇게 큰 어려움을 저에게 주신 겁니까.’ 묻고 또 물었다.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나면 아침에 해결될 것 같은데 여전히 상황은 똑같았다. 더구나 아이의 엄마는 임신 7개월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 부부를 우리 집으로 데려와 보살폈다.
아이는 결국 1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보냈지만 아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정지됐다. 마치 내가 죽은 것 같았다.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님의 비밀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죄책감에서 자유하십시오.” 김의원 전 총신대 총장님과 이영환 대전한밭제일교회 목사님의 적극적인 위로로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김 총장님은 나와 남편에게 집중적인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을 권했다. 2006년 4월 고난주간에 김 총장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요한복음과 창세기, 출애굽기를 가르쳐 주셨다. “혼자 부흥회와 세미나를 다니며 교육 사업을 할 게 아니라 부부가 같이 진행하십시오.”
성경공부를 하면서 남편과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누렸다.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방황을 마치고 과거의 신앙을 되찾고자 열심을 내기 시작했다. 과거 사업실패로 소원했던 부부관계도 회복됐다. 위기 속에서 여호와의 ‘렌즈’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고 매일 삶 속에서 진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
4월 말 미국 LA에서 열린 오순절 100주년기념 아주사 부흥성회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서 금식기도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쓰임 받는 나의 청지기, 지도자를 길러내라”는 하나님의 확실한 명령을 받았다.
집회가 없을 때는 그 지역의 학교를 탐방했다. 락아카데미라는 흑인 학교를 방문했는데 교육철학은 탁월했지만 시설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 학교는 미국을 이끌고 갈 지도자를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이 없는데 체육은 어디서 하죠?” “체육은 근처 체육관에서 하면 됩니다.”
그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학교를 하려면 큼지막한 운동장과 모든 시설을 완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동장 없는 학교는 상상조차 않았던 것이다. ‘맞다! 수영은 수영장에 가서 하면 되고, 농구나 배구는 체육관에 가서 배우면 된다.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철학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어서 빨리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 고난과 연단을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의 힘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어야겠다.’
사고가 난 건물에서 계속 있을 수 없어 지금의 부천 상동 건물로 이전했다. 기독교 교육 콘텐츠는 탄탄했지만 돈도 사람도 없었다. 막막했다. 나는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저는 지금 깜깜한 터널에 있습니다. 하지만 희미한 빛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을 붙들고 열방에 비추겠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은 기독교 교육으로 이 땅의 복음화에 힘써달라며 전혀 알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이 돕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산삼을 들고 왔고 어떤 분은 학교식당을 마련해 주셨다. 실력과 인격을 갖춘 신실한 교사도 모였다. 드디어 2007년 3월 3일 굿뉴스사관학교를 개교하게 됐다. 신기한 것은 외부에 광고 한번 못했지만 42명의 학생들이 온 점이다.
정리=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