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지리산 ‘심원마을’… 이주계획 발표후 수입 반토막 둘레길에 또 반토막

입력 2011-08-30 17:40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유명한 지리산 심원마을이 활기를 잃은 채 시들어가고 있다. 수년 전부터 여름철 도시민들의 휴식처로서의 인기를 잃으면서 탐방객의 발길이 끊긴 것이다. 게다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006년 발표한 공원 외곽으로의 이주 계획은 겉돌고 있다. 투숙객 감소는 국립공원의 보전과 이용에 대한 일관된 정책의 부재, 탐방문화의 변화 등이 두루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심원마을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국립공원의 자랑거리에서 일종의 스캔들로 전락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지리산 심원마을에 도착한 지난 11일에도 비가 내렸다. 큰비가 휩쓸고 지나간 뒤라지만 그래도 휴가철인데 그날과 숙박한 그 다음날 탐방객이나 외지인의 차량을 볼 수 없었다. C민박집을 운영하는 이무익(70) 이장은 하소연부터 시작했다. “심원마을 이주 대책이 발표되고 나서 숙박 손님이 절반으로 줄더니 지리산 둘레길이 생기고 나서 또 반토막이 됐다. 6년 전만 해도 연수입이 2000만∼30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000만원이 안돼 공과금도 못 낼 형편이다.”

다른 관광지도 마찬가지겠지만 심원마을 주민에게 비가 잦은 봄과 여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남부사무소 조사에 따르면 2006년에는 심원마을에 연간 3만6000명이 찾았다. 올해는 지금까지 5000명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공단 관계자는 “겨울에는 어차피 시베리아고, 여름 한철 장사인데 그나마 성수기에 비가 많이 오면 공친다”고 했다. 게다가 오수 처리시설은 성수기 용량 초과로 계곡 오염을 막지 못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하늘 아래 첫 동네가 하늘 아래 가장 어질러진 동네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산골마을의 부침=전남 구례군 상동면 좌사리에 있는 심원마을은 지리산 서쪽 노고단(1507m)과 반야봉(1732m) 사이 해발 750m 고지대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주민을 쫓아내 한때 마을이 없어지기도 했다.

1988년 마을 앞을 지나는 861번 지방도가 놓인 것이 오늘날 갈등의 근원이다. 구례 천은사부터 남원 반선까지 지리산 서북쪽을 횡단하는 임도가 포장된 것이다. 교통이 편해지면서 등산객과 탐방객이 늘었다. 심원마을 주민은 하나 둘 숙박업을 하게 됐다. 특히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청정 오지를 찾아오는 탐방객이 늘자 외지인도 가세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이름값 덕분에 성수기 주말 하루 평균 2000여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여름 한철 장사로 한 집에 5000만∼7000만원 벌기가 예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6년 4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마을 이주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마을이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공단은 “국립공원 지정 당시의 취락마을 성격을 잃고 상업화돼 버렸다”면서 “심원마을을 이전해 계곡의 경관 훼손과 환경오염 원인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마을 주민들은 이주 계획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마을이 사라졌다’는 소문에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졌다고 믿고 있다.

◇규제의 덫=공단은 2007년 심원마을부터 반야봉∼노고단에 이르는 지역을 2026년까지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복원 대상인 반달가슴곰이 집중적으로 서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주 보상도 안 해 주면서 규제만 강화한다”며 “우리가 곰만도 못한 사람이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해 심원마을에서 반야봉 쪽으로 오르던 한 탐방객이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공단 측은 “지금도 산채나 약초를 캐러 가는 현지 주민에게는 자발적 협약을 통해 통행 편의를 봐주는 등 규제 내용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큰소리만 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마을 오폐수 처리시설은 10가구 미만이 살던 90년대 초에 세워진 것으로 최대 하루 450명분을 기준으로 돼 있다. 투숙객이 몰리는 여름에는 용량 부족으로 처리되지 않은 오수가 그냥 계곡으로 흘러들어 악취를 유발한다.

◇집단 이주의 전망=현재 심원마을에 남은 17가구 가운데 70대 가장이 4명이다. 이 이장은 “그 가운데 2명이 장사가 안 되고 전망이 불투명해 고심하다 최근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2006년 이주 계획이 발표된 직후 실시된 주민의견 조사에서 당시 설문조사에 응한 18가구 중 8가구는 거주한 지 20년 미만이었다. 이 이장은 숙박업 전망을 보고 뒤늦게 들어온 사람은 투자금 회수가 안 돼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주민의견 조사 결과 “이주로 인한 상실감이 크나 정부의 정책을 인정한다”는 ‘긍정적 조건부 찬성’이 9가구, “충분한 보상이 따른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부정적 조건부 찬성이 6가구였다. ‘절대 반대’는 3가구에 그쳤다. 공단본부 관계자는 “주민들도 숙박업의 장기적 전망이 비관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들이 결국 바라는 것은 충분한 이주 보상비”라고 말했다.

문제는 예산 책정의 어려움이다. 공단의 이주·복원사업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심원마을의 이주 및 복원 비용은 모두 242억9700만원에 이른다. 이주민 손실보상비 136억여원, 구례군 광의면 천은사 입구에 조성하려는 이주단지 조성비 18억여원, 철거 및 복원비용 86억여원 등이다. 공단 공원시설부 임철진 과장은 “환경부가 추진 중인 북한산국립공원 내 이주복원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예산 확보가 어려워 심원마을 이주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구례=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