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살림하는 남자
입력 2011-08-30 01:25
‘걸어다니는 TV.’ 기자의 청소년 시절 별명이다. 집에 TV가 들어온 것은 1969년 7월 19일이다. 당시 그 다음 날 중계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광경을 보기 위해 부랴부랴 들여놨었다. 그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TV를 보다 그 앞에서 꼬꾸라져 자는 일이 고2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각 방송사의 프로그램은 물론 웬만한 연속극은 그 내용까지 꿰뚫고 있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도 TV를 즐겨 본다. 주중에는 볼 시간이 없으니 주말에 몰아 본다. 비스듬히 앉아 졸면서 평일에 보지 못한 연속극을 챙겨보는 것이 나름 취미생활이다. 무릇 모든 취미생활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때가 있다. 골프를 하는 이들이 공이 잘 맞지 않으면 짜증이 나듯. 요즘 TV 보기가 딱 그 꼴이다.
새로 시작한 주말연속극이 슬금슬금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맘 불편하면 채널을 돌려버리면 되는데, 욕하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 게 드라마다.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은 이유 아닌가. 에두를 것 없이 털어놓자면 ‘변춘남’이라는 등장인물 때문이다. 변씨는 이른바 ‘살림하는 남자’다. 다년간의 '주부' 생활로 쌓인 내공이 만만찮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춘남의 살림노하우’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변씨의 극중 나이가 60은 넘은 것 같으니 요즘 ‘살림하는 남자’들의 원조격인 셈이다.
그런데 이 원조의 자기정체성과 그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이 영 마뜩찮다. 지난 주말 본 장면.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아들을 닦달하는 아내에게 “쟤가 나를 보면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냐”고 말하는 춘남씨. 다른 식구들도 이의가 없다. 본방사수가 어렵다 보니 정규방송에선 몇 주 전 방영된 것이리라. ‘살림하는 남자’는 혼기가 꽉 찬 아들을 장가들고 싶지 않게 만드는 못난 아버지일 뿐이라니. 그 드라마의 작가가 여성이어서 ‘살림하는 남자’를 긍정적으로 그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내심 있었다. 그래서 더욱 심사가 틀어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살림하는 남자’와 육아휴직하고 아이 키우는 ‘홈대디’는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해 취재 대상이 됐다. 하지만 요즘은 활발한 블로그 활동 등 다른 특징이 없는 한 얘깃거리가 못 된다. 그 수가 많아져 희소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 및 가사를 전담해 살림하는 서울 남성이 3만6000명이나 된다. 이는 2005년보다 125%나 늘어난 수치다. 전국적으로는 훨씬 많다. 통계청의 ‘2010년 2월 비경제활동인구’ 통계를 보면 남성 가사 인구는 17만9000명에 이른다. 살림하는 남자의 숫자가 크게 늘고 있음에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취업 못해 할 수 없이 앞치마를 두른 못난 사내.’
TV 드라마는 현실의 허구적 재현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체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새로운 사회 질서를 조직,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춘남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현 사회구성원들을 비춰주는 거울 구실은 할지언정 새로운 질서를 일구는 선도적 역할에는 뜻이 없는 듯하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추석특집 드라마에선 즐거운 마음으로 송편 만들기에 동참하는 남편과 아들, 시댁이 아닌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는 딸 식구들, 둘째네 집에서 명절을 맞는 대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참, 춘남씨도 추석을 앞둔 주말에는 예쁘게 빚어 맛나게 익힌 송편 한 접시 차려내며 ‘살림하는 남자’로 산 반평생이 뜻 깊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갔으면 좋겠다. 가족들도 춘남씨에게 마음 담긴 박수를 보내고(명절 준비로 바쁠 맏며느리인 기자는 또 1, 2주일쯤 뒤에나 볼 수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드라마들은 여성가족부가 2001년 출범 이래 명절 때마다 펼치는 ‘평등부부 새로운 명절문화’ 캠페인보다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드라마 써줄 작가 누구 없소?
김혜림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