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거라 벌레 같은 카다피야” 끊임없이 노래를… 노석조 특파원, 리비아 시민군과 24시간 동행
입력 2011-08-29 21:59
지난 28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시민혁명의 중심지인 순교자광장에서 서쪽으로 7㎞쯤 떨어진 한 주택.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쪽방에서 시민군인 알리 무라드(30)씨가 총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는 탄창에 탄알을 끼워 넣으며 경계근무를 준비 중이었다. 그는 지난 2월 시민혁명이 시작된 후 전자제품 판매원이던 직업도 접었다. 정국 혼란으로 회사가 아예 문을 닫자 시민군으로 뛰어든 것이다.
“카다피가 잡힐 때까지 제가 맡은 구역에 카다피군 차량이 지나가지 않는지 살피는 데 집중할 겁니다.” 왜소한 체격에 돋보기안경을 낀 무라드씨는 탄창 2개와 장전된 AK소총을 들고 집 근처 검문소로 출동했다.
그는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리비아에 자유를”이란 구호를 목청껏 외치며 운전자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는 시민군들에게 배포된 무아마르 카다피의 측근 차량 목록을 보면서 검문 차량 번호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의 표정에는 독재자를 밀어냈다는 자부심과 42년 만의 자유를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이다. 라마단 중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을 해야 한다. 무라드씨는 다른 시민군과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와 눈을 붙였다. 물조차 마실 수 없기 때문에 해가 질 무렵까지 잠을 자는 것이다.
이날 밤 그는 순교자광장에서 동쪽으로 10여㎞ 떨어진 수크 줌마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있는 ‘마드라사 시드’라는 학교가 시민군의 임시 주둔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곳에는 서부 도시 미스라타에서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시민군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임시 주둔지에는 5∼6대의 중형 트럭이 있었다. 트럭마다 유탄발사기 및 기관총 등이 장착돼 있었다. 이 중대급 부대의 지휘를 맡고 있는 오마르 무스타파 레미(35)씨는 “미스라타 전투를 마친 뒤 트리폴리로 주둔지를 옮겼다”며 “카다피군과의 총격전 등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달려간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에는 트리폴리 도심을 분담해 차량으로 돌아다니며 경계 작전을 수행한다”고 덧붙였다. 중고차 매매상이었다는 그는 한국에 자주 출장을 갔었다며 헤어질 때 한국어로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크 줌마 지역에는 카다피 정부군과 용병 등 500여명을 가둔 포로수용소도 있었다. 이곳 역시 원래 학교였다. 교실에 포로를 가두고 무장 시민군이 지키고 있었다.
시민군들은 트리폴리의 90% 이상을 장악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고층 건물에 숨어 있는 저격수 등으로부터 혹시나 있을지 모를 기습 공격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민군은 경계근무를 서면서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타믈라 타믈라 부쉐쇼파 임카믈라(잘 가거라 잘 가거라 망측한 머리모양의 벌레 같은 카다피야).”
시민군은 서로를 영웅으로 추대했다. 카다피군과의 전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순교자라 불렀다. 휴대전화에 담긴 그들의 사진을 돌려보며 추모했다. 카다피 얘기만 나오면 거친 고함을 지르며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아대던 그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대학생이고,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무라드씨도 이날 밤 늦게 주둔지를 떠나 친척들이 모인 집으로 갔다. 동생과 어린 조카들이 그를 반겨줬다. 그는 경계근무를 서며 배운 노래를 아이들에게 불러줬다.
트리폴리=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