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세계육상] 김현섭, 경보 20㎞ 6위… 이틀 전 응급실行 죽도록 뛰었다

입력 2011-08-29 00:40


‘급성 위경련과 열악한 환경도 그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경보 20㎞ 경기를 이틀 앞둔 26일 밤 11시. 한국 경보의 기대주 김현섭(26·삼성전자)은 급성 위경련을 일으켜 선수촌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명은 신경성 위경련이었다. 김현섭은 링거 등 응급치료를 받고 다시 선수촌으로 돌아갔다.

사실상 이번 대회 한국의 유일한 메달 후보였던 김현섭이 응급실로 실려가자 코칭스태프도 발칵 뒤집혔다. 대회 출전 포기를 진지하게 검토할 정도로 상태는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황영조 한국 국가대표단 마라톤·경보 위원장이 “이 상태로 뛸 수 있겠느냐”고 묻자 김현섭은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경기인 만큼 반드시 참가하겠다”고 답했다. 김현섭은 다음 날부터 죽 등 간단한 음식을 먹고 컨디션을 끌어올렸지만 몸 상태는 여전히 정상이 아니었다. 황 위원장은 “사실 기록상으로는 김현섭이 메달을 딸 가능성이 낮았다”면서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가 너무 크고, 자신도 이번 대회에서 잘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려 위경련을 일으킨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28일 대구 시내에서 열린 남자 경보 20㎞에 참가한 김현섭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탈진해 쓰러졌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마지막까지 순위 경쟁을 벌인 끝에 1시간21분17초의 기록으로 6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한국 선수 중 처음으로 톱 10에 진입한 것이다. 김현섭은 경기를 마친 뒤 “잘하는 선수가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며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만족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힘들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특히 14㎞에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경기를 치르며 빨리 골인하자는 마음뿐이었다”고 덧붙였다. 김현섭은 “많은 분이 메달을 따길 바랐고 나도 그랬다”면서 아쉬워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톱클래스 반열에 오른 김현섭은 자신과의 싸움뿐 아니라 아시아 최강 중국과의 대결에서도 승리한 것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실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던 김현섭은 당시 금·은메달을 가져간 중국의 왕하오(13위)와 추야페이(11위)를 이번 대회에서 눌렀다. 대한육상연맹에 따르면 한국 실업팀 등록 선수는 10여명, 실업팀과 초·중·고·대학을 포함해도 선수가 30여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경보의 환경은 척박하다. 중국은 실업팀 소속 선수만 1000명이 넘어간다. 김현섭은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도 중국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이 영광스럽다”면서 “앞으로 내년 런던 올림픽에 초점을 맞춰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