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않는 가계대출, 은행 ‘평가기준 변경’ 탓 크다
입력 2011-08-28 22:01
은행 지점들의 평가 기준을 바꿔 가계 대출에 주력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6월 29일 가계대출 연착륙 방안의 핵심 조치가 현장에서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이 줄어들지 않은 것은 이러한 흉내만 낸 평가기준 변경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28일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등 주요 시중은행의 영업점 성과평가지표(KPI)에 따르면 기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4곳에서 가계대출 항목이 모두 영업이익, 고객 확립 등 항목으로 이전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은행은 영업점 평가 점수 1000점 만점 중 배점 40점을 차지하던 신규가계대출 항목을 지난 1일부터 평가지표에서 배제했다. 대신 신규가계대출 배점을 영업이익, 연체대출 관리 등 항목으로 분배했다.
하나·우리 은행 역시 총 배점 1000점 만점에 40점을 차지하던 신규가계대출 항목을 영업이익, 고객 수 증대, 기업대출 등으로 분산 조치했다. 신한은행도 총 배점 1만점 중 400점을 차지하던 가계대출 항목 배점을 영업이익, 기반고객증대 등 항목으로 분배했다. 기업은행은 신규가계대출 항목 배점(40점)만 삭제해 전체 총점을 960점으로 했다.
영업점 직원이 신규가계대출을 받아왔을 경우 이전에는 신규대출 항목 점수와 대출로 인한 영업이익(가계대출로 인한 이자수익) 점수 2가지 항목에서 점수를 받았지만 이제는 영업이익 점수만 받게 된 것이다. 당초 정부는 KPI 평가에서 신규가계대출 항목을 삭제하면 영업점이 대출을 늘리기 위해 경쟁하지 않아도 돼 가계대출을 줄이는 유인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가계대출 점수가 영업이익 점수에 포함되면서 가계대출 감소 효과가 없어졌다. 가계대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영업이익이 높아져 KPI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파트 단지 등 주택 밀집지역 영업점의 경우 기업대출 등 항목에서 점수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가계대출을 통한 영업이익 점수가 KPI 평가에서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가계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KPI 평가가 지점별 상대평가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계대출을 늘린 영업점이 높은 점수를 받는 구조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영업이익 배점이 높아져 대출금리 상승 요인만 가중됐다. 대출금리를 높게 책정한 만큼 영업점의 영업이익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신규가계대출 평가항목 삭제 조치가 고객들에게 대출금리 상승 요인만 제공한 셈이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영업점 직원은 “영업이익 가중치가 올라갔기 때문에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대출금리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며 “대출심사를 강화해 과거 5% 금리를 받았던 고객에게 1∼2% 포인트 이상 높은 금리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미 고객들의 체감 금리도 오르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주 마이너스통장 대출 금리를 0.5% 포인트 올렸다. 우리은행은 이번 주 일부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2% 포인트 인상할 예정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본격적인 이사철이 시작되는 9월에는 추석이 맞물려 있는데다 물가도 크게 올라 대출을 받으려는 고객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의 가계대출 총액 제한 방침은 사실상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