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명예 기대 안해요, 이웃 섬기는 지금이 전 행복한 걸요”… ‘우리가그린신촌’ 대표 조 연 호 씨

입력 2011-08-28 20:12


“앞으로도 제가 가는 길에 부와 명예는 따라오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쉽지 않습니다. 단지 제 일이 이웃을 섬기는 길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됩니다.” 24일 서울 연세로에서 만난 조연호(34·서울 주님나라의교회)씨는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조씨는 지난해부터 ‘평화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이하 평통기연) 사무국장과 문화단체 ‘우리가그린신촌’의 대표를 맡고 있다.

“평통기연은 말 그대로 이 땅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독교인들이 연합의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초교파 단체입니다. 저는 매주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과 통일의 필요를 알리는 ‘평화칼럼’을 발송하고, 분기마다 통일대회를 열 만한 장소 섭외 및 대회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등의 실무를 맡고 있죠.”

지난 14일 평통기연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주관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남북공동주일연합예배’에서 조씨는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총 진행을 맡아 예배의 순서를 짜고 기도, 말씀, 축사, 격려사 등 순서를 맡은 이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조씨의 또 다른 일터인 ‘우리가 그린 신촌’은 신촌지역 7개 대학(경기대 명지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추계예술대 홍익대) 연합 문화단체다. 조씨는 지난 5월 문화축제 ‘우리가Green신촌 장난’을 기획했다.

“신촌이 무분별한 상업화로 대학가다운 젊은 문화가 실종되고 유흥도시로 전락해 버린 것이 안타까웠어요. 지역 상인들과 대학생들이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조씨는 서대문구청에 행사 기획을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세로의 차량을 통제했다. 각 학교 CCM, 클래식, 인문학 토론회, 구제역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한 바자회 등을 개최했다.

“어떤 상인이 ‘요즘 학생들은 매일 술만 마시고,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보게 됐다. 고단한 삶에 즐거움을 줘서 고맙다’고 하셨을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조씨가 이렇듯 타인 중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은 재수생 시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응답 때문이라고 했다. “1997년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IMF사태 여파로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워졌어요.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4대째 내려온 신앙임에도 지키기 힘들더군요.” 낮에는 건축 현장과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입시공부를 하면서 그의 심신은 지쳐갔다. “하나님께 따졌어요. 너무 힘들다고. 만약 살아 계시면 증거를 보여 달라고요.”

조씨는 그 후 3개월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기댈 곳이 필요했다. 다른 종교로 개종까지 생각했다. 그러던 중 조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부활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무덤덤하게 앉아 있다가 순서에 따라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찬송을 불렀어요. 그때 ‘연호야, 난 널 위해 십자가를 지었단다. 넌 날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니?’ 하는 음성이 들렸어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십자가를 지겠다고 대답했어요.”

조씨는 98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예전만큼 힘들지 않았다. 선후배, 동기들은 외무고시와 대기업 입사를 준비했고, 그 길을 갔다. 그러나 조씨는 신촌 상인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조합을 구성해 영세 상인들이 피해 받지 않도록 도왔다. ‘우리가그린신촌’에서도 꾸준히 활동했다. 그리고 지난 해 평통기연 측에서 조씨에게 사무국장직을 제안했다.

“친구들은 아직도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사냐’고 놀려요. 고액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고 권력 있는 자리도 아니니까 그런가봐요. 그렇지만 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