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83) 조선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
입력 2011-08-28 17:38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9∼1892)은 임금의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헌종(재위 1834∼1849)의 총애를 받은 선비화가랍니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창시된 남종화는 북종화에 대립되는 화파로 장식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자연의 내적 미감을 중시했지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로 이어진 남종화는 한국미술의 뿌리나 다름없습니다.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칭송되기도 한 허련은 1856년 스승인 추사가 타계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으로 내려가 거처를 짓고 ‘운림각(雲林閣)’이라고 이름 붙였답니다. 이곳 첨찰산 주위의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는 뜻에서 따온 것이죠.
마당에는 연못을 만들고 꽃과 나무도 심었지만 허련이 숨진 뒤 아들 허형이 이곳을 팔고 떠나면서 옛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답니다. 이후 허형의 큰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1982년 허형의 작은아들 허건이 원래대로 복원했습니다. 이곳에 걸려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이라는 현판은 허형으로부터 글과 그림을 배운 허백련(허련의 방계 고손자)의 글씨랍니다.
운림산방(사진)은 막돌 초석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ㄷ자형 한식 주택으로 정면 오른쪽 3칸은 화실이며 나머지는 방으로 꾸며졌습니다. 안채는 一자형 초가로 왼쪽부터 방, 부엌, 안방, 윗방, 광이 1칸씩 배치됐으며, 중앙의 안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두었지요. 사랑채는 4칸 규모의 一자형 초가로 왼쪽 끝 1칸은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로 만들었답니다.
전라남도 지정기념물 제51호인 운림산방에는 허련이 심은 백일홍, 매화, 동백, 오죽 등 갖가지 나무와 화초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주변에는 허련의 작품과 그의 화법을 이은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념관, 진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관이 건립되고 연못과 정원 등이 정비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남종문인화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운림산방의 화풍을 계승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허건의 장손인 허진이 있습니다. 운림산방을 5대째 이어오고 있는 그는 서울대 미대를 나와 한국화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지요. 허백련의 장손이자 제자인 허달재도 운림산방의 맥을 이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한 ‘허달재식 한국화’를 개척하고 있는 작가랍니다.
‘진도 운림산방’이 최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됐습니다. 자연유산이 대부분인 명승에 건축공간이 지정되는 것은 드문 경우로,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07호)이 있는 첨찰산의 자연유산과 허련이 조성한 운림산방의 역사문화유산이 조화를 이뤄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랍니다. 건립된 지 155년 만에 문화재로 거듭난 운림산방. 인걸은 간 데 없지만 예술은 영원합니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